[성진실 칼럼] 의료인들의 방사선 방호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 누구는 청첩장이 비공식적인 세금고지서 같다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이 청첩장은 내게 특별한 것이었다. 방사선을 다루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젊은 직원의 결혼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 부모님으로부터 심문아닌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언론이 방사선에 대해 민감하게 다루면서 신경이 곤두섰던 모양이다. “날마다 방사선을 다루는 직업이라니?” “온전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이 직장 오래 다니면 암 같은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왜 하필이면 그런 직업이냐?”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넘어야 할 고개가 얼마나 많은가. 결국 몇가지 다짐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냈다고 활짝 웃으면서 청첩장을 내민다. 어떤 다짐을 드렸냐고 캐묻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영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의료 분야에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료인)과 받는 사람(환자)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론은 환자의 입장에서 방사선 방호를 논의해왔지만 오히려 문제는 의료인 쪽에 있는 것 같다. 위험과 이익을 저울질하는 것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환자 쪽에서 보면 방사선 피폭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정확한 진단과 시기적절한 치료가 진행된다면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더구나 방사선 피폭은 몇차례 이내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의료인은 재직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피폭의 우려가 있다. 방사선을 다루는 의료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동위원소 협회 및 식약청에 등록된 자료에 의하면 약 6만명에 달한다. 이중에서 방사선을 전공한 의료인은 의사 및 방사선사를 포함하면 2만3천명 정도 된다. 이들은 전문직 면허 취득 과정에서 방사선에 대한 지식 습득이 필수적이므로 방사선 방호 측면에서 볼 때 그다지 걱정되는 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나머지 3만7천명 가운데는 방사선 전공이 아닌 의사, 치과 의사, 치과 위생사, 간호사, 업무 보조직 등 다양한 직종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식도 없이 방사선을 다루면서 방사선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용감하게 대응한다. 특히 의사들은 지나치게 용감한 경향이 있다.
수술 도중 엑스선 촬영이 필요할 때, 원칙적으로는 촬영 현장에 있는 의사는 방사선을 차단하는 방호 장구를 착용해야 옳다. 방사선에 민감한 부위인 생식선, 갑상선, 눈의 각막 등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한창 수술을 진행하던 중에 방호 장구를 다시 착용하는 것이 번거로운 게 사실이다. 손세척, 장갑 착용, 수술복 착용 등 모든 과정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선배 의사들은 “그래도 애만 잘 낳았어”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필자가 파악하기로는 거의 모든 경우)의 의사들은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환자 옆에서 있다가 방사선에 피폭이 된다. 피폭량으로 보았을 때 한 두 번은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은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들 의사들은 연간 자신의 방사선 피폭 량이 얼마인지 측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제 기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이다. 그러다 보니 IAEA가 마치 핵사찰기관과 동일어처럼 이해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 기관이 하는 업무는 매우 포괄적이다. 특히 방사선의 평화적 이용 측면에서, 방사선의 의료적 이용에 대한 실태 조사, 교육, 지원 등이 기구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IAEA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의료분야에서 방사선의 이용과 방사선 방호에 관한 사업이다.
의료 분야에서 방사선의 이용은 그야말로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관리는 그 증가폭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결국 IAEA에서는 ‘의료 분야에서 방사선 방호’라는 주제로 각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국제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달 초에 독일 본(Bonn)에서 열렸던 이 회의에 필자도 참석하여 토론에 나섰는데,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보였다.
본 국제회의에서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심장내과 의사들의 피폭이었다. 심장내과의 세부 전문 분야 가운데 중재적 심장내과가 있는데 엑스선으로 심장 촬영을 하면서 스텐트 삽입 등 심장 관상동맥에 각종 중재적 시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시술하고 있어 방사선 방호 측면에서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조사 발표 자료에 의하면 백내장의 바로 전단계인 각막 혼탁이 같은 연령의 일반인에 비해 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방사선의 특성인 산란선이 시술자의 각막에 영향을 준 것이다.
대중 매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사선 피폭 얘기가 나오면 누구나 제일먼저 암 발병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암은 자신의 유전적 취약성, 환경적 요인 등 너무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방사선과 암의 인과 관계는 확률론적으로 추정하게 된다. 반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인체의 각종 장기의 변화는 이미 많은 자료가 있으며 피폭량에 따라 예측이 가능한 즉, 결정론적으로 접근한다. 숙련된 의료인의 건강은 국가의 중요 자산이기도 하다. 의료인의 방사선 방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