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재균의 여자이야기]피임약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지난 1세기 동안의 혁신적인 패러다임 제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00년대 플라스틱, 1910년대 부품 조립라인, 1920년대 TV, 1930년대 레이더, 1940년대 핵폭탄, 1950년대 피임약, 1960년대 레이저, 1970년대 시험관 아기, 1980년대 PC, 1990년대 월드와이드 웹입니다. 여기서 눈을 끄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1950년대의 피임약과 1970년대의 시험관 아기입니다. 이 2가지 아이템은 제가 전공하고 있는 산부인과 영역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는 임신을 막는 피임약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대로 수많은 불임 부부에게 희망을 준 시험관 아기입니다.
인류 역사상 피임약만큼 젊은 여성들의 생명을 지켜내는데 크게 공헌한 제품도 드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부인과 영역에 있어서 가임연령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대부분 임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궁외 임신, 인공유산에 따른 출혈과 감염등과 같은 합병증, 전치태반, 임신중독증, 산후출혈, 폐 전색증,융모상피암...
임신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이들 질환에 의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산모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만일 피임약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원치 않는 임신에 따른 인공 임신중절과 임신과 분만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합병증과 질환은 가임연기 여성의 생명을 위협했을 것입니다.
피임약은 새롭고 놀라운 변신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초기 피임약에서 사용되던 고용량(100mcg)의 에스트로겐 제재는 저용량(30mcg)이하로 바뀌었습니다. 용량과 성분, 용법 면에서 많은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져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한 다양한 약제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가하여 피임 목적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부인과적 질환의 치료와 예방약으로도 사용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월경통과 월경량 감소, 빈혈의 예방, 자궁외 임신, 골반염, 양성 유방종양의 감소, 자궁 내막암과 난소암의 예방이 그런 예입니다. 이를 넘어서 새롭게 부각되는 이점으로는 골다공증 예방, 대장암, 자궁근종과 류마티스관절염의 감소, 불규칙한 출혈, 여드름, 자궁 내막증과 갱년기 증상 등의 치료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부인과적 질환을 총 망라하여 그 사용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피임약은 피임 이외의 목적으로 처방되는 건수가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피임약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호르몬제재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인 편견으로 소비자인 여성들이 사용을 기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들마저도 경구 피임약의 피임 외적 효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먹는 피임약은 다양한 형태의 부인과적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여성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피임약은 진화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