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칼럼] 방사선 영상검사로 인한 방사선피폭

방사선 영상 검사로 인한 방사선 피폭

30대 후반 직장 여성인 나근심씨는 이른바 골드미스 시기를 한참 넘겨 결혼을 했다. 핑크 빛 신혼 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기 전에 아기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날 대변을 보니 꽤 많은 양의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이었다.

겁이 덜컥 나서 가까운 병원을 찾았는데, 담당 의사는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검사 항목에는 CT 촬영까지 들어가 있었다. 근심씨는 며칠 전 뉴스에서 CT 등 각종 방사선 영상 검사가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보도가 기억이 났다. 아기를 가져야 하는데, 또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과연 방사선 영상 검사를 받아야 하나?

귀남이는 3대 독자 집안의 외아들이다. 손이 귀한 집안인데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자식이라 귀남이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집안 모든 원칙의 영순위이다. 그 아들이 학교에서 넘어져 머리와 팔에 상처를 입었다. 겉으로는 가벼운 찰과상으로 보이지만 머리를 다쳤으니 뇌 사진을 찍어 봐야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머리에 방사선을 쐬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상황들이다. 방사선에 대한 보도 기사가 나가면 과도하게 민감해지게 되는데 대개 방사선하면 지능 저하, 기형아, 암 등등, 치명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방사선을 일부러 쬐어 좋을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이득과 손실을 저울질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소 손실이 있더라도 이득이 크면 당연히 방사선 영상 검사를 하는 것이 좋고 반대로 손실은 치명적인데 이득이 적다면 방사선 영상 검사를 피해야 할 것이다.

나근심씨의 경우는 수정란 및 태아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이루어진 수정란은 10~14일정도 지나면 자궁 내벽에 착상을 하고 이후 50일 정도까지 각종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를 거친다. 이 시기가 지나 비로소 태아라고 이름이 붙고 출산까지 계속적인 성장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착상 전에 방사선을 쐬게 되면 수정란은 착상에 실패하여 유산이 된다. 100 밀리그레이 이상에서 일어날 수 있고 그 이하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즉 ‘all or none’ 현상으로서 유산되거나 아니면 무사히 착상되는 시기이다. 일단 착상이 되면 이후 탈 없이 임신이 지속되는 경우이다.

가장 민감한 시기는 착상 후에 각종 장기가 만들어지는 약 40여일의 기간인데, 이 때 방사선을 쐬면 뇌신경 기관의 이상, 각종 내장기관의 기형, 성장발육의 장애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얼마까지가 안전하고, 얼마부터 위험할 것인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일 텐데 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참고하는 것은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역학 조사 자료들과 동물에게 방사선을 쬐어서 얻은 실험적 결과들이 대부분인데, 100 밀리그레이 이상의 선량이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방사선량에 비례해서 위험 수준의 빈도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문턱과도 같이 100 밀리그레이 이하에서는 거의 생기지 않고 그 이상이 되어야만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 형성의 시기가 지나 ‘태아’가 되면 방사선에 의한 장애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즉, 태아 이후에는 방사선 영상 검사 수준의 방사선을 쐬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 출생 후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귀남이의 뇌사진 촬영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더구나 이득과 손실의 저울질을 한다면 머리에 외상을 입었을 때에 잠재적인 출혈을 방치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의사의 지시가 있다면 CT 촬영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보다 1000배나 많은 에너지의 방사선인, 암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수준의 방사선을 쐴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이 주제는 본 시리즈의 후반부에 이야기할 예정이다).

근심씨는 자신이 임신을 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잘 모르면 임신 반응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이전에는 마지막으로 정상적인 생리가 언제였는지를 물어서 검사여부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생리주기가 불규칙한 여성도 많고 의외로 자신의 생리 주기를 챙기지 못하는 여성도 많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가임 여성이 방사선 영상 검사를 하게 될 때에 이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인 복부 CT 촬영을 할 때에 우리 몸은 약 4~10 밀리시버트의 방사선에 노출되는데, 조영제를 주사하고 찍는 다면적 촬영을 하게 되면 이의 3~4배에 달하는 최대 40 밀리시버트(40 밀리그레이로 환산할 수 있다) 정도를 받게 된다. 따라서 임신하여 착상 전 시기에 해당된다면 CT 촬영이 전혀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치할 수 있는 다른 검사방법이 있다면 방사선 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

만일 착상이 되고 나서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에 돌입하였다면 방사선 영상 검사로 인한 피폭 수준이 100 밀리그레이 이하의 안전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의학적으로는 방사선 촬영을 권하지 않는다. 매우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근심씨의 증상을 들어보면 대장의 일부인 직장 또는 항문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간단하게 항문 수지검사(손가락을 넣어 비정상적인 혹덩어리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검사)를 해보고 추가적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무조건 CT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다른 대안을 실행하는 것이 좋다.

방사선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의사들은 방사선 영상 검사의 피폭 수준에 대해서나 이로 인한 생체 영향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일반 시민만큼이나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태아의 기형 문제만 하더라도 방사선과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빈도가 3~10 퍼센트에 이르는데, 잘 모르면 무조건 방사선을 의심하곤 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방사선 영상검사를 많이 한다고 한다. 의사도 일반 시민도 좀 더 지혜로워 져야 할 때이다. 

[성진실 칼럼] 방사선 영상검사로 인한 방사선피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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