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칼럼] 반감기

식품 안전성에 대한 염려는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는다. 언제는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난다고 떠들썩하더니 요즘은 라면에서 나오는 발암 물질로 시끄럽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국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리숙했던 70년대에도 식품 안전성 문제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유명 제과회사에서 사탕의 빛깔을 곱게 하기 위하여 롱가리트라는 강력한 표백제를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간식거리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때만해도 알록 달록한 사탕이 호사스런 간식이었다. 더구나 그 회사 대표가 자기 자녀들에게는 절대 먹지 말도록 했다는 뒷 이야기까지 나와 시민들을 흥분시킨 사건이다. 이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이라는 시에도 등장하는데, 이 시를 읽고 소감문을 쓰라는 숙제를 받은 학생들이 ‘롱가리트’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자주 눈에 뜨인다. 참 옛날 일이었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순수하지 못한 상혼이 결부되어 있다면 더욱 분노할 일이다. 필자가 롱가리트 사건을 40여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바로 해로운 줄 뻔히 알면서도 이윤을 더 챙기려 한 비윤리적인 행동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련의 식품 안전 관련 기사들은 다분히 한 건 올려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고, 덧붙여서 대중 매체의 상업성도 연루되어 보인다. 이를 통해 반사 이익을 보고자 하는 경쟁업체의 상도덕 실종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라면에서 검출된 벤조 피렌의 양은 고기 구어 먹을 때 생기는 양의 일만분의 일보다 더 작단다. 연기 자욱한 가운데 삼겹살 구어 먹고, 담배피우면서 폭탄주 마셔댄다면 일급 발암물질은 모조리 몸에 쏟아 붇는 셈이다. 우리네 회식 문화는 그야 말로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서서 ‘발암물질 섭취 권하는 사회’이다.

얼마 전에는 아기들 먹이는 분유에 세슘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고 사회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분유라는 것이 살아있는 소/양에서 짜낸 젖으로 만든 것이니 그들이 무엇을 섭취하는 지가 영향을 주게 된다. 초식성 동물들이니 사료의 주원료는 당연히 식물들일 것이다. 이들이 뿌리를 박고 양분을 섭취하는 토양이라는 것은 지구의 껍데기인 암석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방사선 이야기-2를 참조) 암석에는 방사선 동위원소가 미량이라도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여기서 만들어진 토양은 방사성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주에서도 날라 오고(우주 방사선), 요즘처럼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 상재하는 때 대기를 통해서 또는 비를 통해서 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먹이 사슬의 초기 단계인 식물들로 흡수되며 이 식물들을 섭취하는 다음 단계로 갈 것이다. 결국 최종 섭취자의 배설물 등을 통해서 다시 하수나 토양으로 가는... 이렇게 먹이 사슬의 순환 고리가 진행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능을 잃어간다. 원래의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 하며 여러 번의 반감기를 거치면 최종적으로는 방사선을 전혀 내지 않는 시기에 달한다. 이러한 물질 고유의 성질에 의한 반감기를 ‘물리적 반감기’라고 한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을 섭취하게 되면 고유의 물리적 반감기 이외에 소화, 배설 등, 인체의 생리적인 현상의 영향으로 인한 ‘생물학적 반감기’도 거치게 된다. 물리적 반감기와 생물학적 반감기를 합쳐서 ‘유효 반감기’를 산출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의학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요오드 동위원소는 물리적 반감기가 8.04일, 생물학적 반감기가 8일이며 유효 반감기는 7.6일이다. 세슘 동위원소는 물리적 반감기가 30년이지만 생물학적 반감기가 109일에 유효 반감기는 108일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게 되면 스트론튬 동위원소의 물리적 반감기는 28년, 유효 반감기는 16년이며 플루토늄은 물리적 반감기 2만4300년에 유효 반감기는 198년이다.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인류가 방사선 제로인 환경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어디까지 안전한가를 따져서 허용 가능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모든 공산품, 식품들의 성분표를 꼼꼼히 읽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먹고 마시고 바르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초기 농경 사회의 소규모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돌아 가지 않는 한 이런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허용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허용 수준 이내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라면 예를 사회 문제화 시킨 정치가나 공무원 다 이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아니면 공명심에 급급한 경솔함의 잘못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제발 전문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신뢰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성진실 칼럼] 반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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