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주인공: 속옷
누군가 내 속옷을 만지는 것만으로 뿅 가는 걸 경험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남자친구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하교하는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말없이 걷다 갑작스레 남의 차 후드에 기대어 격렬하게 키스를 한다. 흥분한 남자친구가 내 교복치마 뒤로 손을 쑤셔 넣으며 팬티 위 엉덩이(어머니, 죄송해요. 하지만 야자시간은 다 채우고 나왔답니다.)를 꽈악 움켜쥔다. 그의 손길이 교복 아래에서 거침없이 움직이지만 속옷의 장벽을 넘지는 않는다. 키스는 오케이나 속살을 어루만지는 것은 아직 거북한 나이였으니. 이제는 나도 남자의 청바지 지퍼쯤은 쑤욱 잘 내리는 능글맞은 여자이나 속옷이 커플 사이에서 버티는 러브 패턴에 자극 받고, 흥분하는 건 여전하다.
예전엔 속옷이 우리 사이를 애태우고 긴장하게 만드는 벽이라면, 지금은 마치 ‘제 3의 인물’이 나와 내 남자의 성기 사이에 뭉개고 있는 느낌? 나와 그와 그리고 팬티. 아~샌드위치 러브여, 영원하라!
속옷을 입고 서로의 하반신을 김이 나도록 비비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침이 끼어들면 그 효과는 폭발적이다. 이때, 팬티는 반드시 망사 소재의 시스루일 것. 침으로 속옷이 흠뻑 젖도록 애무한다.
사실 여자들도 그렇지만 특유의 체액 냄새 때문에 오럴섹스를 꺼리는 남자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집에 구비해놓은 윤활액이 있다면 시스루 팬티 중심부에 윤활제를 잔뜩 부어 손으로 마사지를 하면 굳이 입술을 쓰지 않고도 서로 기분 좋게 흥분할 수 있다. 윤활액이 묻은 손가락으로 팬티 아래 살-특히, 페니스와 클리토리스 발기 여부에 주목-을 문지르고 누르자. 템포를 빨리 하다 잠깐 멈추고, 다시 시작해서 상대를 감질나게 만들다 보면 오르가슴은 어느 새 성큼 옆에 있다.
허나 속옷을 쓰다듬는 게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섹스의 꽃은 인터코스니 속옷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 마치, 가끔은 남자주연보다 더 멋있지만 결국 대본상 여자주인공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서브남자주인공처럼 말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주연배우들과 끝까지 함께하는 속옷도 있다. 예를 들면, T팬티 같은 것. 속옷을 미처 벗길 틈도 없이, 여유가 없는 광폭한 섹스 배경이 잡히면 시작부터 아주 좋은 신호다. T팬티는 구조 상 한 쪽으로 밀어 붙여도 삽입이 용이하기 때문에 이런 몰아치는 분위기에 제대로 어울리는 소품. 남자가 위에서 누르는 기본자세에서 여자의 다리 한 쪽을 번쩍 올리면 이 낀 팬티의 비주얼 효과는 극대화된다. 피스톤 운동이 격렬해지면 팬티 자욱이 생식기 주변에 빨갛게 남겠지만 온갖 잡동사니가 담긴 커다란 숄더백에 눌려 어깨에 빨간 선이 남는 것에 비하면야 꽤 기분 좋은 흔적 아닌가?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