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 칼럼] 불산 피해자 치료, 매뉴얼 따랐다면
응급조치로 세척하고 중환자엔 혈액 투석
지난달 27일 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유출사고로 불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불산이란 불화수소산, 즉 불소와 수소가 결합한 불화수소의 수용액을 말한다. 산업용 원자재로서 석유 정제, 알루미늄과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의 제련, 전자회로와 각종 화학물질의 제조 등에 쓰인다. 불소는 항우울제 프로작, 프라이팬 코팅제 테플론, 불소 치약의 성분으로도 중요하다. 불산의 산성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염산보다 부식성이 크다. 다른 산과 달리 피부를 뚫고 조직 속으로 쉽사리 침투해 강력한 독성을 일으킨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것은 순도 99%라서 특히 위험하다. 공기와 접촉하면 자극성이 강한 흰 연기를 피워 올린다. 일부 언론에서 불산이 섭씨 20도에서 기체로 변한다고 보도한 것은 오류다. 그런 성질을 가진 것은 불화수소지 그 수용액인 불산이 아니다.
◆불산의 노출 기준치: 미 직업안전보건국이 정하고 있는 직업적 노출의 기준치는 3ppm(공기분자 100만개 당 불산분자 3개)에서 8시간이다. 미 국립직업안전보건연구소는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 위험을 미치는 수준을 30 ppm으로 규정했다.
미국 산업위생협회(Industrial Hygiene Association)는 건강에 일시적이고 가벼운 피해만을 입히는 기준치를 2ppm에서 1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 암연구소를 비롯한 어느 정부나 기관도 불산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신체에 미치는 영향=고농도의 불산이나 불산 증기가 피부에 닿으면 하얗게 탈색되며 물집이 잡힌다. 이 같은 화상은 욱신거리는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저농도의 불산에 의한 화상은 몇시간 내지 하루 정도 통증이 없을 수도 있다. 신경말단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눈에 닿으면 각막이 파괴되거나 혼탁해진다. 입속 점막이나 상기도에 물집이 잡히며 심하게 부풀어오른다. 목구멍이나 기관지는 경련을 일으킨다. 허파꽈리 등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폐부종을 일으킬 수도 있다. 피부를 뚫고 혈액 속으로 들어간 불산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과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이것은 불소 이온이 몸속의 칼슘•마그네슘 이온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들 이온은 인체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중요한 생리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불산이 칼슘과 반응해 불화칼슘을 만들면 핏속의 칼슘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를 보충하려고 칼륨이 방출되면 고칼륨증, 저칼슘증, 저마그네슘증 등이 생긴다. 손바닥(160 ㎠)보다 넓은 면적에 불산 화상을 입으면 전신중독의 위험이 있다.
◆응급조치 및 치료 매뉴얼: 불산 노출 사고와 관련한 대표적인 대책 매뉴얼(http://www51.honeywell.com/sm/hfacid/common/documents/HF_medical_book.pdf)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신속한 조치다. 체내의 칼슘 등과 결합해 조직을 파괴하지 않도록 불소 이온과 잘 결합하는 물질이 치료제로 쓰인다. 사고 직후부터 제피란(분자량이 큰 제4암모늄 화합물)으로 피부를 적셔주거나 글루콘산칼슘 젤을 계속 발라주어야 한다. 의료기관에 갈 때까지, 도착해서 의사를 만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극도로 중요하다(extremely important)”고 매뉴얼은 강조한다. 글로벌 기업인 하니웰이 작성한 이 매뉴얼은 “조치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이뤄지면 좋은 경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치료가 늦어지거나 부적절하면 커다란 피해가 생기고 잘못하면 치명적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병원에선 글루콘산칼슘 성분을 흡입시키거나 정맥•동맥에 주입한다. 심각한 전신중독엔 혈액투석을 시행한다. 이번 사고에선 이같은 대응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