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orgy
내가 대학 신입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대를 앞둔 한 남자선배의 이별주를 위한 자리가 열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흥이 오르자 누군가 거대한 스테인리스 그릇을 상 위에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술자리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군대 가는 선배에 대한 애정을 그릇에 담았는데 하아! 마시다 남긴 소주 붓기는 애교요, 담뱃재를 떨어뜨리고 침을 뱉는 것도 모자라 치킨을 뜯던 손가락으로 내용물을 휘휘 저어 남자선배에게 건네는데, 결벽증 환자가 보았으면 가히 기절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 때 파티의 주인공이 그 그릇을 다 비웠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내용물을 모으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좀 더럽지 않나 라는 수치심과 함께 기묘한 긴장감이 서려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orgy(난교) 파티 속 주인공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저마다 혀와 손가락을 하나씩 거드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 남자가 잠자리에서 손가락을 ‘지저분하게’ 쓸 때면 우습게도 그 때, 그 술자리의 이별의식을 떠올린다. 몸을 쓰다듬을 때 비위생적으로 핑거링을 한다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평범한 섹스 패턴에 손가락 하나, 입술 한 번 ‘어색하게(수치심을 조장하는)’ 쓰는 동작 하나가 침실에서 ‘1+1=4’ 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사실! 고정된 파트너와의 릴레이션십에서 권태는 방심하면 금세 늘어나는 콧잔등 위 블랙헤드처럼 끼어드는데, 그럴 때면 나는 미지의 파트너들과의 난교 느낌을 침실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분위기 전환을 한다. 남자의 성기와 손가락을 여자의 은밀한 곳으로 함께 집어넣는 것은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테크닉. 키포인트는 남성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인데, 이 때, 여성이 골반근육을 긴장시킨 상태에서 천천히 돌리면 하반신에 더욱 꽉 찬 포만감을 준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손가락은 너무 많이 넣지 않는 것이 기본 에티켓이다. 사이즈 콤플렉스의 반사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깊숙한 남쪽 통로에 항상 3개 이상의 손가락을 쑤셔대며 긁어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B와의 옛 일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눈치 빠른 이는 이미 계산을 마쳤겠지만 아직 1+1이 연출하는 포썸이 되기엔 한 군데가 비어있다. 빙고, 여자의 입술이다. 여자의 신음이 파트너의 흥분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은 다들 안다. 그 신음이 만약 꽉 차여 막힌 상태에서 흘러나온다면 섹스 집중도가 확 오를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남성의 나머지 쉬는 한 손으로 여성의 입술을 희롱하는데, 손가락을 서서히 입 안에 넣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넣었다 빼기를 반복해보자. 마치 성기가 여자의 입 안을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물론 이 때도 당신의 페니스는 여성의 질 안에 당신의 손가락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난교’라는 주제에 잘 어울리는 그림을 연출할 욕심이 있다면 여성은 고개를 똑바로 치켜드는 것보다 옆으로 틀어 손가락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보일 것.
또, 사람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며 자극을 주는 도우미로 윤활액을 빼놓을 수가 없다. 흥분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자부한 나지만 몇 년 전 건강상의 문제로 몇 달간 어쩔 수 없이 섹스할 때마다 윤활액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다시 윤활액의 도움 없이도 질퍽하게 섹스를 즐기지만 그 때 사두고 남은 몇 통의 윤활액은 이 난교 컨셉트의 잠자리, 특히 오럴 섹스를 할 때마다 다시 출연하는 기특한 아이다. 이 그림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남자는 벽에 기대어 앉고, 여자는 몸을 가로로 누인 상태에서 오럴 섹스를 한다. 남자의 한 손은 여자의 가슴을 애무하고, 나머지 한 손에는 윤활액을 콸콸 부은 다음 여자의 질 안에서 손가락 왕복 운동을 한다. 침실 소음에 둔감한 파트너의 귀도 단번에 부끄럽게 만들, 끈적끈적한 사중주 완성.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