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환자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
환자단체연합, 27일 환자 샤우팅 카페 개최
“제 2, 제 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마이크 앞에 선 김영희 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김 씨는 2년 전 항암제를 투약해 사망한 정종현(당시 9세) 군의 어머니다. 정군은 정맥에 주사해야 하는 항암제를 척수 내에 잘못 주사한 사고로 희생됐다. 힘겨운 항암치료로 고생을 거듭하던 아들, 숨이 멎은 뒤의 얼굴이 더 편해 보였다는 대목에서 김씨는 눈물이 차올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객석 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를 맡은 MBC 최현정 아나운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문단으로 함께 자리한 서울의대 의료정책과 권용진 교수도 울먹이며 “그 의사도 괴로워할 것이다. 제가 대신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는 당사자면서도 그 동안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환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7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환자들 스스로 치료 받을 때 느꼈던 억울함과 불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환자 샤우팅 카페’를 개최했다. 샤우팅(Shouting:외침) 이란 사회를 향한 하소연이자 외침을 뜻한다고 환자단체연합회는 설명했다.
행사 제목은 ‘solution(해결), healing(치유), shouting(외침)’. 환자가 외치고, 자문단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참가자들이 귀를 기울여 환자의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자문단을 맡은 권용진 교수, 상명대학교 간호학과 이한주 교수, 이인재 변호사와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선 여러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놨다. 자신의 골수를 이식한 수술을 두 차례 받은 뒤 타인의 골수를 이식받으려 했던 다발성골수종 환자 김규원씨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을 포기해야 했다. 로봇 수술 대상이 아닌 신우암을 로봇 수술받다가 결국 사망한 탤런트 고 박주아씨의 유족 김아라씨도 나섰다.
수술 도중 체내에 구멍이 뚫린데다 응급 수술이 늦게 이뤄졌고 중환자실에서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데다 산소호흡기가 빠지는 등 연속적인 사고 때문에 이모님이 사망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대장암을 앓고 있지만, 표적치료제 ‘아바스틴’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매달 5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자비 부담해야 하는 이윤희 씨의 샤우팅도 있었다.
특히 앞서 소개된 고 정종현 군의 사례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종현군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시타라빈과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함께 사용해 치료해야 한다. 주의사항은 시타라빈은 척추내 공간인 척수강에, 빈크리스틴은 정맥에 주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종현 군은 빈크리스틴을 척수강에 투약하는 실수로 사망했다. 어머니 김 씨는 “항암 치료를 마치는 마지막 주사였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진료 기록도 누락돼 있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자문단으로 참석한 권용진 교수는 “종현이 법(환자안전법) 제정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종현이 사고를 계기로 의사나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 보호자가 해당 약물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면서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겠지만 환자가 확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복잡한 약관을 핑계로 혈액암에 대한 보험수술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민간 보험사를 상대로 집단 민사소송을 준비 중인 양희숙 씨, 의료진의 실수로 가슴속에 솜을 넣고 2년 동안 불편 속에 살다가 외과수술로 솜을 제거한 이운영씨도 있다. 소송을 준비 중인 이씨는 “의사에게 항의하자 ‘그게 왜 그거에 있지? 그런데 가슴에는 솜이 좀 들어 있어도 상관없어요’라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분개했다.
다발성경화증의 재발을 막기 위해 복용해야 하는 약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애만 태우고 있는 신아름 씨의 샤우팅도 이어졌다. 500자의 글로 샤우팅 한 위장관기질암(GIST) 환자도 있었다. 재발방지를 위해 수술한 후 3년 동안 항암제 ‘글리벡’을 복용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은 1년밖에 안 돼서, 한 달 260만 원의 약값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는 현장 샤우팅 신청도 줄을 이어 예정보다 한 시간을 넘긴 저녁 10시 30분에야 마무리됐다.
행사를 주최한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홍보가 부족해 사람이 많이 안 올 것을 걱정했는데 100명 정도 와주셨다”면서 “앞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서 보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는 등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겠다”고 밝혔다. 환자 샤우팅 카페는 앞으로 격월로 진행되다가 곧 수시 개최로 변경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