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동영상에 담으면 어떨까요?"
고려대 이준상 명예교수, 23일 촬영 시연
“보다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마련한 유언 프로그램입니다.” 23일 오전 고려대 의대의 한 사무실. 이 대학 이준상 명예교수가 녹화 카메라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자신의 유언을 동영상에 담는 촬영 현장이었다. 이 교수는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해서 공증을 받는 복잡한 방식 대신 누구나 쉽고 명확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서 자신에게 처음 적용했다.
이 교수는 먼저 2010년도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연명치료(완화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을 읽은 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삽입, 수혈 등 6가지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 등 기증희망자로 등록을 신청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사전 의료 의향 계획서’와 장기·시신 기증 문서, 유언장에 자신의 인감도장을 찍었다. 이 교수는 인감도장이 찍힌 문서들을 하나씩 카메라 쪽으로 내보였고 카메라는 문서들을 클로즈업 촬영했다.
이 자리에는 강교석 고려대 외래교수와 신현호 변호사가 유언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보증인으로 참석했다. 신 변호사는 “오늘 동영상은 USB로 보관해서 하나는 이 교수 본인, 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의료법학연구소에서 보관하겠다”며 촬영을 마무리했다.
이날 행사는 연명 치료 중지 여부, 장기·시신 기증, 유산 상속에 대한 의사를 동영상으로 녹화하는 방법을 예시한 자리였다. 신 변호사는 “음성만 들어있는 기존의 녹음 유언보다 더욱 공정성·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동영상 유언은 국내외적으로 이례적인 유언 방식이다. 신 변호사는 “민법상 유언은 자필, 녹음, 공정증서 등 5가지 방식이 있다” 면서 “동영상은 녹음 방식의 변형으로 유언의 효력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도 영상 촬영을 해서 유언으로 남긴 예는 거의 없다”면서 “장난 삼아 (동영상을) 찍는 등 남용을 막아 모든 이가 권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특허도 출원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난해 3월 ‘사전 의료 의향 계획’이라는 동영상 유언 방식을 디자인 특허로 출원했다. 그는 “이 사업은 사단법인 한국의료법학연구소의 목적사업이고 보건복지부의 정식 승인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이날 촬영한 영상은 다른 문서 없이 그 자체만으로 기존 유언 방식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녹화된 동영상을 바탕으로 녹취록을 만들어 그 파일을 가정법원에 제출하면 판사들이 진위를 가리기 위해 이해 관계자에게 확인한 뒤 조서에 서명날인을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조서는 공식 문서로서 효력을 갖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환자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면 효력을 의심 받을 수도 있다”면서 “녹화를 하는 것이 (유언 작업을 쉽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언 동영상의 장점으로 환자가 병원에서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나이든 사람이 일일이 자필로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오늘은 시연이자 내가 첫 번째(촬영)인데 이를 보고 느끼는 점을 더해 다른 사람들은 더 간편하게 (촬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촬영 시연으로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유언 동영상이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