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 일반약 전환, 논란 가열
의료·종교계 반대, 약사·사회단체 찬성
사후피임약을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일반약 전환에 무게를 두고 검토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30일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하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데다 종교계와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충분한 협의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5월 중 전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법상 사후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전문약으로
분류돼있다.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복용하면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아준다. 하지만
사전피임약의 10배에 달하는 호르몬이 들어있어 부작용의 우려가 있다. 대부분의
서방국가는 사후피임약을 의사 처방없이 살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예외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검토방침에 산부인과학회를 비롯한 종교계는 반발하고 있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재무이사는 30일 "성관계를 시도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는 가운데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오·남용만을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 음성적인
방법으로 응급피임약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을 찾아 사후관리나 신체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일반약 전환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은 응급피임약이 필요한
용도를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송열섭 총무도 “해외의 연구결과를 보면
피임약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회일지라도 낙태를 줄이는 효과는 없다”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피임의식조차 부족한데 피임약을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다면 성관계, 생명 자체에 대한 경시 풍토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동안 약사회와 경실련, 여성계 등의 시민단체는 사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풀어달라는 요구를 계속해왔다. 대한약사회는 “응급피임약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약이며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며
“우리도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후피임약뿐인데, 굳이 처방을 받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가까운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지난 해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경실련은
“사후피임약은 소비자의 빠른 판단으로 복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진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부작용은 경미하다”며 “5년 동안 단 3건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낙태와 미혼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할 방침을 세웠지만 종교계와 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한 의료계의 반발로 실행하지
못했다. 지난 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사후응급피임약의 경우 오남용 가능성과
유익성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의약품 분류가 결정되어야
한다”며 보류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