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되기 쉬운 뇌 따로 있다
조현욱의 과학산책
자제력 관련 신경섬유 이상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는 자제력과 관련된 영역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다. 최근 인터넷이나 비디오 게임 중독자에게서도 유사한 현상이
확인됐다. 그러면 뇌의 이상은 중독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지난주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그 해답이 실렸다. 중독되기 쉬운 뇌 구조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코카인 중독자
50명과 그 형제자매들의 뇌를 스캔해 비교했다. 형제자매는 마약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뇌는 자제력과 관련된 대뇌피질 부위를 연결하는 신경섬유에
중독자와 똑같은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일반인 50명의 뇌를 스캔한
결과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카렌 에르체 박사는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 모두가 중독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뇌의 배선이 중독에
취약하게 구성돼 있으면 약물의 지배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 이어 “반드시 중독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중독되기 쉬운 뇌 구조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환경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70년대 후반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쥐 공원(rat park)’ 실험이 대표적
예다. 심리학과의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팀은 19㎡ 넓이의 쾌적한 공원을 만들었다.
치즈를 비롯한 풍부한 먹을거리, 공과 바퀴를 비롯한 놀이거리, 새끼를 낳을 특별한
공간, 따뜻한 보금자리 등을 제공했다. 그리고 암수를 섞어 16마리의 흰 들쥐를 풀어놓았다.
또 다른 16마리의 쥐는 비좁고 격리된 우리 속에 한 마리씩 가두었다. 모든 쥐에게는
모르핀을 탄 설탕물이나 그냥 수돗물을 마실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우리 안의
쥐는 ‘공원’의 쥐보다 모르핀 물을 최대 16배 더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실험에서는 57일간 중독돼 있던 쥐도 ‘공원’으로 옮겨주자 금단증상을
겪으면서까지 모르핀을 덜 마시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01년 캐나다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동물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회가 닿는다면 약물을 통해 고통을 해결하려 들게
마련이다.”
결론? 중독은 뇌의 선천적 이상과 관련이 깊지만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심리와 행태의 근원을 밝히려는 과학적 노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