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성조숙을 늦추는 슬로 육아법
박민수의 우리 아이 몸맘뇌 키우기
키가 작아 병원을 찾은 수지에게는 다소 심한 성조숙증 증세가 일어나고 있었다.
비만은 아니었지만 심한 과체중 상태였다. 수지의 어머니는 무척 바쁜 분이었다.
하는 일이 굵직굵직한 것만도 대충 네다섯 개가 넘었다. 그러다보니 수지는 돌이
지난 후 주로 할머니와 도우미 아주머니 손에서 자랐다.
엄마는 아이의 키가 자라지 않고 성조숙증 기미가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급히 병원을 찾았다.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하던 그녀였지만 아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자책하는 마음이 여간 크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수지의 경우
아이도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2차 성징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나타난 사례였다. 나는
우선 수지 어머니에게 하루하루 삶이 바쁜 것도 문제겠지만 아이의 마음을 바쁘게
만든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만큼 바삐 돌아가는 사회가 있을까? 바쁜 삶은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내면을 다스리고 내실을 다지는 일에는 서투르기 마련이다.
수지의 일상에는 바쁜 한국 사회의 단점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우선 수지가 즐겨먹는 패스트푸드가 가장 큰 문제였다. 수지의 입맛은 제대로
교육되거나 훈련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이가 원하는 음식은 제한 없이 주어졌다.
할머니는 엄마의 보살핌이 없이 자라는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에 사달라는 햄버거나
피자, 치킨을 마음껏 사주었다. 엄마 역시 자신의 빈자리를 자극적이며 고칼로리
음식들이 가득한 근사한 외식으로 채우려는 심리가 강했다.
아이에게는 음식에 관한 한 아무런 원칙이나 지침이 없는 실정이었다. 먹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먹고, 먹기 싫은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었는데도 수지는 여태 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했다. 당근이나 브로콜리는 입에 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약간 나무라듯 말했다. 아이가 원하는 음식들은
아이에게 독약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당장 현미와 채식 위주의 식사로 완전히
바꾸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아이가 현미 채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먹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일렀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의 저녁 한 끼쯤은 엄마가
직접 요리해 먹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지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강박증이 있었다. 남편은 물론, 그녀 자신도 소위
명문대를 나왔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최소한 자신이 나온 대학교 정도는 가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아직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수지는 저녁 7시가 넘도록 국
영 수 학원을 전전해야 했다.
나는 수지 어머니에게 아이의 성장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이의 귀가 시간을
늦어도 6시까지 앞당기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엄마나 아빠가 한 시간
정도 산책이나 취미생활을 함께하라고 권했다. 스트레스는 성조숙증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저것 복잡한 스케줄이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주된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의 심리검사에서는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나 과도한 스케줄에 따른 피로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이 안의 시계는 또래 아이들보다 무섭게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수지 엄마에게 아이 마음속에서 바삐 돌아가는 시계를 정상적인 속도로 늦춰야 한다고
했다. ‘빨리, 어서’ 라는 주문보다 ‘천천히, 차근차근’ 다독이면서 아이의 마음속
빠른 시계를 늦추라고 조언했다.
물론 수지에게는 키를 키우는 적절한 운동요법, 저칼로리-고영양 식생활 설계,
그동안 몸속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는 디톡스 생활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함께
내려졌다. 그리고 성조숙증을 지연시키는 의학적 처방도 내려졌다.
마지막으로 수지 엄마와 여담 삼아 일주일에 하루 정도 온가족이 함께하는 바깥나들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일요일도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온가족이 함께한
야외나들이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속도가 지배하고 있지만, 행복이나 가치있는 삶은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때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가을이다. 온가족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 산으로 나들이
가보면 어떨지. 우리들의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급증하는 아이의 성조숙증도
어느 정도 늦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조숙증을 다스리는 5가지 슬로 육아원칙
1. 환경호르몬이 많이 배출되는 플라스틱이나 각종 화학물질들로부터 거리를 둔다.
빠르고 편리하지는 않지만 사기그릇, 나무장난감 등 친환경 제품들로 물건들을 교체한다.
2. 아이에게 ‘빨리’보다는 ‘천천히, 차근차근히’를 주문한다. 인위적인 짜맞춤보다는
자연주의 육아관에 입각해 아이를 양육한다.
3.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푸드를 즐긴다.
4. 아이의 눈높이에 서서 성공이나 경쟁보다는 삶의 질과 행복의 가치를 항상
염두에 둔다.
5. 100세 건강과 장수의 관점에서 아이의 인생을 재설계한다. 소모나 축적보다는
건강과 여유의 관점에서 아이의 삶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