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치료제로 에이즈 감염 인정”
대법, 제약사 상대 손배소 원심 판결 파기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한 뒤 에이즈에 감염됐다”며 혈우병 환자 및 가족들이
제약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제약사 손을 들어준 원심(2심)을
파기,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29일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한 뒤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렸다며 혈우병 환자 이모(22)씨 등 16명과 가족 53명이 제약사
녹십자홀딩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혈우병을 앓아오던 이씨 등은 녹십자홀딩스가 설립한 한국혈우재단에 회원으로
등록한 뒤 재단을 통해 녹십자홀딩스가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를 유·무상 공급받았으며
이후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되자 2003년 녹십자에 총 3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혈액제제 투여와 에이즈 감염 사이의 연관성을 최초로 인정해 이씨에게
3천만원을, 가족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고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서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안 지 10년이 넘어 소송 시효가 소멸됐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혈액제제 투여와 에이즈 감염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어 제약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 회사가 1990년대 초반 무렵부터 B형 혈우병 치료제인
이 사건 치료제를 본격 제조·유통시켰는데 그 무렵 우리나라의 B형 혈우병
환자에서 에이즈 감염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사실, 이 사건 치료제는 수백 명 내지
수만 명으로부터 채혈한 혈액을 모아 하나의 풀을 만들어 가공하는 방식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혈액제공자 중 한 명이라도 감염자가 있는 경우 그 혈액이 원료로 사용된
풀에서 만들어진 모든 혈액제제가 오염될 가능성이 높은 사실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일부는 이 사건 치료제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따라서 “피고가 제조한 치료제의 결함 또는 피고의 과실과 위 감염된
원고들의 에이즈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된다”며 “원심은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