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따려면 꼭 선두그룹에서 뛰어라
김화성의 종횡무진 육상이야기⑫
황영조와 이봉주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마라톤 레이스 이틀 전인 8월27일. 바르셀로나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가 친구 이봉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1970년생 개띠 동갑내기이다. 코오롱에서 정봉수 감독 밑에서
94년부터 3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무서운 정 감독의 눈을 피해 가끔
팀을 도망쳐 지방 멀리 놀러가기도 했고 허물없이 장난도 치며 지냈다. 이봉주의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를 소개한 사람도 황영조이다. 94년 황영조가 그의 중학교
동창생이었던 김씨를 이봉주에게 소개했던 것이다. 다음은 황영조의 편지다.
“내 친구 봉주에게. 이제 네가 마라톤 평원을 누빌 일만 남았구나. 솔직히 친구로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꼭 금메달을 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몇 자 적는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정직하다. 동등한 조건에서 인간한계를 실험하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담고 있으니까. 그만큼 손에 넣기도 힘들다. 이번 레이스를
놓고 ‘지옥의 코스’니 ‘무더운 날씨’니 말들이 많은데 사실 의미가 없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조건은 똑같으니까. 23일 열린 여자마라톤에서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라
래드클리프(영국) 대신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가 우승할 줄 누가 예상했겠니.
넌
이번 레이스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가는 것과 아예 2위 그룹에 처져 뛰는 것. 첫째 선택은 금메달을 노릴 수는 있지만
오버페이스를 할 경우 자칫 메달은커녕 10위권 밖으로 처질 수도 있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두 번째 선택은 상위권 진입은 가능하나 금메달을 딸 수는 없다는 게 문제다.
선택은 네 몫이다.
난 늘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레이스를 마치고 바로 은퇴한다’는 생각으로 올인했다.
몬주익 언덕을 올라갈 때 숨이 턱까지 찼지만 죽을 각오를 했기에 모리시타(일본)를
이길 수 있었다.
최근 네가 “아테네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뛸 것”이란 말을 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31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하고도 또 뛰겠다니…. 하지만 지금은 올림픽 후의 생각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오직 올림픽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너나 나나 이제 서른넷이다. 지난달 말 강원도 횡계에서 훈련에 열중인 너를 봤을
때 ‘이젠 봉주도 옛날 같지 않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까.
너에겐 이번이 올림픽 금메달을 딸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 봉주야,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구나. 묵묵히 성실하게 땀 흘리는
네 모습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죽을 각오로 달려 한국에 멋진 금메달을
선사하기를 친구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힘내라 봉주야. 아테네에서 친구 영조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황영조의 이야기는 맞았다. 황영조의 말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이봉주는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메달권에
들지 못할 바에야 중도에 기권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치고 나갔어야 했다. 30명
가까이 선두권을 형성해서 달렸던 15∼20㎞ 구간에서 죽을힘을 다해 한번 치고 나갔어야
했다.
아마 황영조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판단되면
기권했을 것이다. 어차피 승부는 한번 걸어볼 만 했다. 바로 이런 점이 황영조와
이봉주의 다른 점이다. 이봉주는 줄기차게 따라붙는 ‘은근과 끈기형’이다. 반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게 특징이다. 이런
스타일은 일단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한번 호흡이 일그러지면
달리기가 엉망이 된다.
황영조는 천재형이다. 바로 여기다 싶으면 뛰쳐나가 대뜸 승부를 건다. 이것이
성공하면 바르셀로나에서와 같이 우승을 하게 되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하위권으로
떨어진다. 극과 극을 달리는 셈이다.
이봉주는
96년 3월17일 애틀랜타올림픽 티켓이 걸린 동아국제마라톤(경주 코스)에서 2위에
오르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당시 라이벌 황영조는 29위(2시간29분45초)로 올림픽출전
티켓을 따는데 실패했다. 25km 지점에서 선두권 20여명이 스피드를 올리자 황영조가
갑자기 그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인도에 앉아서 신발을 벗었다. 얼굴은 온통 일그러져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발에 쥐가 난 데다 발바닥에 물집까지 생긴 것이다.
황영조는 잠시 근육을 푼 뒤 절뚝거리며 다시 달렸지만 승부는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으로 몬주익의 영웅은 하루아침에 추락해 버린 것이다.
당시 올림픽 티켓은 3장이었다. 이봉주는 역시 끈질겼다. 35km 지점부터 스페인의
마틴 피즈와 끈질기게 선두다툼을 벌였다. 피즈가 도망가면 이봉주가 따라붙었고,
이봉주가 조금 앞설라치면 피즈가 곧바로 따라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결승선에서
피즈에 뒤처졌다. 1초차 2위에 머물렀다. 1초면 5~6m쯤 뒤처져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 뒤를 김완기 김이용이 잇따라 들어왔다. 결국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이 애틀랜타올림픽에
나갈 한국선수로 결정됐다.
여론은 ‘황영조 구제론’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건국대 학생이던 김이용 대신
황영조를 보내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선발규정이 유명무실해지고 나쁜
선례가 되는 문제가 생긴다. 여론은 “황영조를 보내야 된다, 안 된다”로 갈수록
들끓었다. 이렇게 되자 황영조가 스스로 전격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꽃을 피우자마자 곧 져버린 셈이다. 당시 육상계는 물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애틀랜타올림픽이 코앞인데 유력한 금메달 후보가 티켓도
따지 못한 채 은퇴해버리다니.
거꾸로 이봉주는 이때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애틀랜타올림픽 2위-98방콕아시아경기
우승-2000도쿄마라톤 2위(한국최고기록 2시간7분20초)-2001보스턴마라톤 우승-2002부산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하며 황영조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오인환 감독은 말한다. “두 사람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황영조는 부모로부터
천부적인 심폐기능을 물려받았다. 보통 사람보다 폐활량이 두 배가 넘는다. 이봉주는
그 반대다. 피나는 노력으로 유산소운동을 많이 해서 폐활량이 커졌다. 성격도 황영조가
외향적이라면 이봉주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다.”
그렇다. 황영조는 천재다. 그는 말을 참 잘한다. 기자들을 몰고 다닌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늘 화제를 만들어낸다. 방송해설자로, 마라톤 감독으로, 크고 작은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항상 분주하다.
이봉주는 노력가다. 피와 땀과 눈물로 그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8000m 급 산봉우리(애틀랜타올림픽
2위, 보스턴마라톤 우승, 아시아경기 2연패)는 수없이 올랐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올림픽우승)엔
오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