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김화성의 종횡무진 육상이야기 ⑧
지상의 모든 생물은 날갯짓을 꿈꾼다. 돌고래는 7m가 넘게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고
날치는 은비늘을 반짝이며 허공을 가른다. 심지어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까치발을 딛는다.
인간도 타는 목마름으로 날갯짓을 꿈꾼다. 어깨 죽지가 늘 가려워 피나게 긁는다.
하지만 깃털은 아무리 기다려도 움을 틔우지 않는다. 손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손은 새처럼 날개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한때 라인 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족은 막대를 짚고 개천을 뛰어넘으며
비상(飛翔)을 꿈꿨다. 러시아농민들은 쇠스랑을 장대삼아 2m가 넘는 건초더미를 뛰어오르는
놀이를 즐겼다. 영국에선 긴 나무장대를 이용해 돌담을 뛰어넘고 아일랜드에선 장대를
짚고 개울을 뛰어넘었다.
중국인들은 한술 더 떴다. 손오공을 내세워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름잡았다.
손오공은 여의봉을 사용해 산과 산을 훌쩍 뛰어넘고 과거와 현재를 가로 질렀다.
그래서 원숭이는 중국인들에게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뛰는 영물로 통한다. 원숭이해가
되면 중국의 산부인과 병원마다 꽉꽉 차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장대높이뛰기엔 날갯짓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수평 운동에너지가 두둥실
한순간에 수직에너지로 바뀌며 한 마리 새가 된다. 인간은 그 순간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은 무아지경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항하는,
저 가슴 속 끓는 피의 간지러움. 그래서 막 허공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자세는 먹이를 막 잡아채려는 독수리의 모습과 같다.
오직 두둥실 떠오르려는 생각뿐, 잡념이 전혀 없다. 몸의 균형도 완벽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하나도 없다. 미학적으로도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수평에너지를
단박에, 거의 직각으로 수직 에너지로 바꾸는 생물은 지구상에 오직 높이뛰기 선수뿐이다.
그 수많은 종류의 새들도 한 순간에, 직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새는 없다. 대부분
비행기처럼 사선을 그으며 비상한다.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는 말한다.
“도약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인간 능력의 집결체이다.
손의 움켜짐, 발의 구부림, 그리고 어깨와 골반의 근육, 화살을 날리는 활시위처럼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장대 등 그 복합적인 행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선견력(先見力)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의 목표를 세워놓고 자기의 관심을 거기에다 집중시키는 능력이다.
장대의 한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는 그의 행동과 뛰는 순간의 정신집중 같은 것들은
계속적인 계획의 수행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낙인이 되는 것이다.”-<인간 등정의
발자취>
장대는 선승들의 화두나 같다. 화두는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오직 화두에
매달리다 보면 저절로 망상과 잡념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 화두조차 털어내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은 멀다. 화두도 하나의 집착이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이젠 배를
버려야 한다.
장대도 하늘로 가는 ‘화두’다.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정점에 이르기까지는 장대에
의지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장대를 버려야한다. 장대에 너무 매달리면 다시 중력의
힘에 이끌려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장대가
창이 되어 자신을 찌른다.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장대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2000년 일본 미야지마현에서 열린 일본선수권대회 장대높이뛰기 남자부 경기에서
야쓰다 다토루(25)는 장대에 똥침을 맞았다. 5m40cm 3번째 도전에서 무사히 바를
넘었지만 떨어지다가 그만 장대에 항문과 직장을 찔린 것이다. 야쓰다는 이 사고로
유니폼은 물론 장대 끝과 안전용 매트까지 흥건하게 피를 흘렸다. 결국 수술까지
받고 한달이 넘게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5m40을 넘은 기록이 인정돼
2위에 입상한 것이다.
장대는 힘을 싣는 데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몸의 균형을 잡는데도 쓰인다. 망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를 때 화두는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듯 장대는
몸이 체조선수처럼 균형 있게 떠오르도록 지지해준다.
2001년 중국의 한 위그르 족 청년은 중국 후넌성(湖南省) 헝산(衡山)에 위치한
해발 1200m와 1290m 높이의 두 봉우리 사이를 오직 장대 하나만을 의지해 건넜다.
두 봉우리 사이를 연결한 1400m의 외줄 위를 장대(12kg)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52분
만에 건넌 것이다. 놀랍게도 그 청년은 단 하나의 보호 장구나 안전벨트도 없었으며
안개가 끼어 가시거리가 불과 3m에 지나지 않았다.
화두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유명한 조주스님의 ‘무(無)’자 화두이든,
‘이 뭣꼬(是甚麽)’나 ‘차나 마셔라(喫茶去)’이든, 아니면 ‘뜰 앞 잣나무(庭前栢樹子)’나
심지어 ‘마른 똥막대기(乾屎橛)’이든 뭐든지 좋다. 그래서 선승들의 화두는 무려
1700개나 된다.
장대도 길이나 직경의 제한이 없다. 소재도 어느 것이든 좋으며 무게도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길이는 보통 남자 기준으로 5.7~6.15m를 쓰며 가벼운 것일수록,
탄력이 좋을수록 좋다. 선수 개인의 신체조건이나 체중 신장 스피드에 맞춰 장대를
고르면 된다. 선수가 장대를 잡는 위치는 장대 밑 끝부터 4.9m~5.1m 사이. 오른 손
잡이는 오른 손을 위로 잡는다. 장대는 1개에 무려 100만원이 넘는다.
장대높이뛰기는 고대올림픽에서도 있었으며 1896년 부활된 근대올림픽에서도 있었다(남자).
여자장대높이뛰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채택됐다. 장대높이뛰기 기록은
어느 장대를 썼느냐에 따라 다르다. 탄력이 좋을수록 더 높이 뛸 수 있다. 1911년까지
골프채의 샤프트로 쓰였던 히코리나무(서양호두나무)나 옛날 우리 서당에서 회초리로
주로 쓰던 물푸레나무가 쓰였다. 하지만 그런 장대들은 탄력이 거의 없어 에너지
낭비가 많다. 그 당시 남자 세계 최고 기록도 3m55에 불과하다.
더구나 선수들은 장대가 거의 구부러지지 않는 점을 이용해 일단 점프를 해 몸을
떠올린 후 순간적으로 몸을 장대를 타듯 기어 올라가 바를 넘었다. 소위 ‘봉 타고
올라가기’가 성행한 것이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회에 일본산대나무 봉이 등장했다. 1912년엔 대나무
봉으로 4m 벽을 처음 넘었고 그 후 4m77까지 뛰어 넘었다. 하지만 일본(대만)산 대나무
시대는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끝난다. 승전국 미국의
알루미늄 장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57년에 장대를 땅에 박을 때 지탱해 주는 버팀쇠(박스)와
낙하하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매트리스(그 전까진 모래바닥)가 등장했다.
알루미늄 장대는 1960년까지 사용됐으며 최고 기록은 4m88. 1961년부터는 유리섬유나
탄소섬유가 쓰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붑카가 꿈의 기록인
6m14의 세계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유리섬유나 탄소섬유는 낚싯대처럼 끝부분만 휘어져 도약의 속도를 잘 전달하면서도
휘어짐이 커 몸을 더 튀어 오르게 한다. 또한 탄력이 좋아 봉의 위치를 더 높이 잡을
수 있고 많이 휘어지므로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바를 넘을 때 신체적 여유가
있어 동작을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요즘 장대는 탄소 코팅 처리한 첨단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탄성과 내구력이 더 좋아져 90도 이상 구부러진다.
장대높이뛰기는 육상의 종합 예술이다. 육상 경기의 오페라나 같다. 단거리선수의
스피드(도움닫기)가 필요한가 하면 높이뛰기선수와 멀리뛰기 선수의 도약력(구르기)을
요구한다. 체조선수와 같은 균형감(공중자세)이 필요하고 포환·해머·원반·창던지기와
같은 투척선수의 마무리자세(낙하)가 요구된다. 여기에 장대를 효과적이고 감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정력이 있어야한다. 상하체가 고르게 발달하고 다리가 길고 강하며
팔이 긴 사람이 유리하다.어깨 근육과 복부 근육이 발달해야 높이 뛸 수 있다. 체조선수출신
러시아 ‘미녀 새’ 이신바예바(26·174cm 65kg) 복부에 임금 왕(王)자가 새겨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올림픽 출전 남자 선수의 평균키가 182cm 79.8kg(여자선수
169cm 59.8kg)에 이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또한 근력, 순발력, 민첩성, 평형성이 발달해야 하며 리듬 타이밍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그래서 높이뛰기 선수에게 단거리, 체조, 철봉, 평행봉, 트렘블린,
로프 타기 연습은 필수다.
①출발(도움닫기)
더 빨리 달릴수록 더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다. 도움닫기 스피드가 빠를수록 장대를
더 높은 데서 잡을 수 있고 장대를 높이 잡을수록 보다 큰 상승에너지를 탈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용맹 정진해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야 한다.
힘차게 달려온 수평 운동에너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장대에 모두 실리는 것은 아니다.
일부 운동에너지는 어쩔 수 없이 손실될 수밖에 없다. 봉을 폴 박스에 꽂을 때의
충격, 구름발이 지면에 가하는 힘, 장대가 휘어질 때 등 운동에너지의 일부는 사라진다.
체중과 장대 잡는 손잡이 높이, 스피드가 조화가 돼야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손잡이 높이를 높이는 데는 오직 스피드만이 해결한다.
세계 남자 톱클래스 선수들의 봉 잡는 높이는 4m80정도. 선수들은 최대한 속도와
거리를 늘리면서 최대속도(32~34km/h)에 도달하도록 속도를 낸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초속 7m92~8m22의 스피드로 달린다. 세계적인 단거리 선수들 속도(초속 10m97~11m27)에
비해 약 3m정도 느리다. 5m40 이상을 뛰어 넘는 남자선수들은 통상 100m를 10초8이내
50m는 5.5~5.7초의 빠르기를 가지고 있다. 도움닫기 거리는 제한이 없지만 보통 40m는
넘어야 좋은 기록이 나온다. 선수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다르다. 주법은 무릎을 많이
올리고 탄력 있게 달리고 마지막에는 발바닥 전체로 트랙을 밟고 보폭은 좁힌다.
②장대 꽂기
화두는 바람이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다. 망상은 바람꽃이다. 틈만 나면
화두를 지운다. 수레가 나가지 앉을 때 수레를 다그치면 안 된다. 소를 채찍질해야
한다.
장대는 폴 박스에 찍어야 한다. 폴 박스에 장대를 꽂지 않으면 아무리 높이 뛰어
넘어도 무효다. 화두를 놓치는 순간 깨달음의 길이 사라지듯, 장대를 폴 박스에 단단히
꽂지 않으면 한순간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미국의 ‘미녀새’ 스테이시 드래길라는
“초심자들은 대부분 폴을 박스에 꽂는 순간 두려움에 질려서 자기 가슴을 찔러버린다.
수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수평 운동에너지는 폴 박스가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장대로
옮겨진다. 약간 끝이 치켜 올라간 장대는 점차 아래로 내려지면서 지상의 폴 박스를
향한다. 일단 장대가 수평이 되면 선수가 균형을 잃게 되고 속도가 초속 약 7.7m로
떨어진다. 폴 박스는 착지면 앞과 바걸이 사이에 있다. 장대지르기는 발 구름 2보전에
시작하고 발 구름 1보 앞에서는 아래손이 완전히 처져 있어야 한다. 발 구름 지점은
지면과 바가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위치에 있다.
③발구름및 도약
화두만 잡고 있으면 모두 부처가 되는가. 기왓장을 천년만년 돌에 갈면 거울이
되는가. 깨달음은 단박에 이뤄진다. 깨달음의 길은 계단식이 아니다. 홀연히 도둑처럼
온다(頓悟). 밥 먹다가, 밭에서 일하다가, 똥 누다가 “아항,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친다.
날갯짓은 아픔이요, 숨 막히는 두려움이다. 아픔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면 결코
허공에 떠오를 수 없다. 온 몸으로 발구름 한 뒤 장대를 타고 단박에 두둥실 올라가야
한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바닥에서 20도 각도로 오른다. 동시에 장대는 체중에
의해서 구부러진다. 휘어진 장대의 복원력에 의해 뛰어 오른다.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 올리고 엉덩이도 따라 추켜올려 몸을 둥글게 만든다. 장대가 펴질 때 두 다리를
머리 위쪽으로 올린다. 폴이 펴질 때 몸도 재빠르게 펴 올린다. 몸을 끌어올리는
동작은 폴의 탄력과 신체의 반동으로 강하면서도 빠르게 해야 한다. 폴이 수직으로
되기 전에 양 다리를 머리로 올리되 양 다리는 합쳐서 폴 가까이 놓이도록 한다.
폴이 탄력성이 있을 때 이를 이용해 몸을 두둥실 떠올린다. 폴을 잡은 손의 높이가
높을수록, 신장이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면 나갈수록, 폴의 속도는 느려진다.
④비행(飛行)과 바 넘기
산꼭대기에 올라간 사람만이 그 기분을 안다. 올라가 보지 않고 산 밑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하다. 올라 온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한다.
수평운동에너지를 흡수한 장대의 유연성은 선수를 물구나무서기 동작으로 밀어낸다.
선수는 자신의 엉덩이와 다리를 돌고래처럼 나선형으로 용트림하며 뻗음으로써 거꾸로
선 동작을 강화한다. 한순간 두둥실 정상에 올라선다. 짜릿하다. 내친김에 등과 다리를
펴면서 공중물구나무 서기를 한 몸통은 땅에 거의 수직이 된다. 장대가 원상으로
돌아올 때 팔로 장대를 밀어낸다. 물구나무 선 동작에서 몸을 바깥쪽으로 틀면서
다리-허리-몸통 순으로 바를 넘는다. 바를 넘을 때는 롤 오버(모로 넘기)를 주로
한다.
⑤착지
한번 깨달으면 그 경지는 죽을 때 까지 영원히 계속되는가. 아니다. 잠시라도
쉬면 거울에 먼지가 쌓인다. 거울은 쉬지 않고 닦아줘야 빛이 난다(漸修). 큰 스님들이
모든 것 훌훌 털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유다. 더 낮은 곳으로, 저잣거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한번 공중에 두둥실 몸을 떠올린 뒤 다시 지상에 떨어졌을
때 그는 이미 뛰어 오르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새로 태어난 자이다. ‘거듭난
자’ 이다. 설령 그가 실패했을지라도 그는 날갯짓의 그 숨 막히는 떨림을 맛본 사람이다.
소설 ‘광화문 그 남자(?)’ 아니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은 고개를 끄덕인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추락의 순간’이라고.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은 지상의 한 점 위에 장대를 박고, 그 위에 거꾸로
선다. 그는 ‘높이’와 싸우는 자이다. 그가 지상의 한 점에 장대를 박을 때, 그는
수평으로 달려오던 속도의 힘을 수직의 상승으로 전환한다. 그는 수평의 힘으로 수직을
지향하는데, 이 전환은 그가 지상의 한 점 위에 존재의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허공으로 솟구친 후 표적을 넘어서 다시 땅 위로 추락하는
순간이다. 존재의 전환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땅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장대에 의해서만 땅을 박차고 솟구칠 수 있고, 그렇게 솟구쳐 오른 허공에서 다시
땅 위로 떨어진다. 그는 날개가 없는 자의 운명을 돌파하지 못하지만, 그 운명 앞에서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는 땅의 속박을 딛고 솟아올라서 다시 땅의 속박 안으로 돌아온다.
그의 인간된 몸은 이 질곡의 운명 속에서 아름답다. 그것이 땅 위에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을 받은 인간의 몸이다. …거꾸로 치솟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의 몸을 보면서
내 몸 속에 숨은 수많은 척도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는다.
인간의 자유는 스포츠엘리트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몸 안의 척도가 몸 밖의 척도를
무찔러 가는 과정을 따라서 전개될 것이다. 허공으로 치솟은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아직도 세상의 척도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몸으로서 외로워 보인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 탈출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러나 꿈을 꾸면, 날갯짓을
하면 살아 탈출할 수 있다. 흔히 혼자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꿈은 혼자 꿀 수밖에 없다. 그래서 꿈이다. 깨달음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찾는 것이다.
새는 왜 나는가. 산악인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왜 공중에
떠오르려 하는가. 왜 지상의 편안함을 버리고 자꾸 날갯짓을 하려 하는가. 구상 시인의
말한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라고. 그런데 왜 그 꽃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는가.
꽃이 피고 잎이 진다. 꽃과 잎은 둘이지만 그 뿌리는 원래 하나다. 뿌리는 꽃을
피워 내 뿌듯하고 꽃은 씨앗을 맺어 뿌리를 만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러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고 한번 의심하고 뒤집어 봐야 비로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된다. 두둥실 떠오르다가 추락해봐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꽃자리’임을
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내려와 봐야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이 가장 높은
곳임을 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에서 일어나라. 정말 우습구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자여.
팁 페이지
‘나는 인간새’ 부브카(1963~)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5.90m로 우승했고 1983년 헬싱키세계선수권부터 내리 6번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1985년엔 6.00m를 사상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6.10m를 넘은 선수도 그가 유일하다.
그는 세계기록을 35회(실외 17회, 실내 18회)나 경신했다. 그가 1994년 이탈리아에서
세운 6.14m는 현재가지도 난공불락의 벽으로 남아있다. 한 때 우크라이나 국회의원(2002~2006)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장, IOC위원이며 IAAF 수석부회장이다.
러시아의 옐레나 이신바예바(1982~)는 육상경기 사상 가장 인기 있는 선수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미녀 새’란 그의 별명이 그걸 증명해 준다. 장대높이뛰기란 ‘허공에서
이뤄지는 춤사위’라고 말할 수 있다. 눈 깜빡할 동안이지만 공중에서 새처럼 훨훨
춤을 춘다. 누가 가장 높이 떠올라 가장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느냐가 열쇠이다. 수영의
다이빙도 비슷하지만 다이빙은 10m 높이에서 물에 떨어지면서 춤사위를 보여준다.
장대높이뛰기와 다이빙은 머리방향이 반대이다.
여자장대높이뛰기는 1999년 세비야세계선수권대회부터 채택됐다. 그 전까진 “여성에겐
무리”라는 시각이 많았다. 세비야세계선수권 첫 대회에선 미국의 드라길라가 4m06cm로
우승했고, 2001년 에드먼턴대회 때도 4m75cm로 우승했다. 2003년 파리대회에선 러시아의
페오파노바가 4m75cm로 우승했다.
올림픽에선 2000년 시드니에서 첫선을 보였다. 역시 드라길라가 4m60cm로 첫 금메달을
가져갔다. 그러나 2004아테네에선 이신바예바 차지였다. 4m91cm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낚아챘다. 2008년 베이징에서도 5m5cm의 세계신기록으로 연거푸 올림픽우승을
차지했다. 이신바예바는 2005년 헬싱키세계선수권(5m01cm)과 2007년 오사카세계선수권(4m80cm)도
휩쓸었다. 이신바예바는 1987년부터 1997년까지 기계체조선수로 활동해 ‘기계체조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기계체조의 경험이 그를 장대높이뛰기에서 꽃을
피우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