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도, 피셔도… 그들은 왜 달리는가?

김화성의 ‘종횡무진 육상이야기’ ①

달리기엔 중독성이 있다. 인간의 줄기세포엔 본능적으로 달리기에 대한 유전인자가

들어있다. 일단 한번 빠지면 그 누가 뭐래도 빠져 나올 수 없다. 보통 매일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이라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정도가 되면 중독에 빠진다. 이

상태가 되면 하루도 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라톤

중독자는 한사코 주위 사람들에게 ‘달리기의 즐거움’을 외치며 기꺼이 ‘달리기

전도사’가 된다.

그러나 마라톤 중독은 마약 도박 술 중독과는 다르다. 마라톤 중독자는 그런 중독자와는

달리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학대하거나 질책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록이 나쁘게

나와도 그들은 밝게 웃는다. 달리기를 계속 하다보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달리기 그 자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진정한 황홀감은 순환적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달리고, 달리기 때문에 행복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라는 책의 저자인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기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하루키도, 피셔도… 그들은 왜 달리는가?

그는 책 서문에서 "나의 꿈은 발이 빠르고, 근육이 강하며, 쉽게 잡히지

않는 영양을 쫓는 것"이라면서  "본래 우리(인간)는 애완용 개보다

늑대에 가까우며, 무리지어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기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5㎞에서 42.195㎞까지 마라톤'의 저자 제프 겔러웨이는 "나는 13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곧 초보자의 열정 즉, 힘든 운동에 대한 매우 특별한 스릴과

내 몸이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에 중독됐다"면서 "일 주일을

달리고 움직일 수도 없이 아팠지만 몸이 회복되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며 그 후

달리기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1949~)는 하루도 빠짐없이 달린다. 그곳이

도쿄이든, 뉴욕이든, 서울이든 개의치 않는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그에게 생명선과

같다. 바쁘다는 핑계도 그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기를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 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1년 서른 둘 나이에 운영하던 가게를 처분해 버리고 전업소설가로 나섰다.

글쓰기는 뼈를 깎는 작업이다. 고통스럽다. 하루 60개비씩 담배를 태워가며 글을

썼다. 생활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땐 밤을 꼬박 새우고, 대신 낮엔 정신없이

쓰러져 잤다. 몸이 견딜 수 없었다.

1982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했다. 담배도 끊었다. 그리고 1983년 7월18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번째 풀코스를 완주했다. 30km까진 괜찮았다. 내심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5km부터 헉헉거렸다.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텅 빈 가솔린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첫 번째 풀코스완주를

해냈다. 3시간51분. 초짜치곤 훌륭했다. 고통의 순간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뿌듯한

마음과 함께 ‘다음엔 좀 더 낫게 달려야지…’하는 다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달리는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 갈 뿐이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서 좋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린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

남는다.”

그는 근육을 믿지 않는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동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고지식하다. 순서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면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라도 연습을 쉬어버리면 “아하, 이제 그렇게까지

힘쓸 필요가 없어졌구나. 아, 잘 됐다.”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들이고 살고

싶어 한다.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나간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로 ‘달리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달린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코스마라톤을 하겠는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 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성적이나 숫자의

순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 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요쉬카 피셔(1948~) 독일 전 외무장관은 삶 자체가 드라마다. 푸줏간 집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길거리에서 배웠다. 고교중퇴. 노숙자, 빈집 점거 농성자, 우편배달부,

거리화가, 택시운전사, 헌책방 주인, 공장노동자(오펠 자동차공장에서 파업주동자로

해고), 고급포르노그래피 번역자, 반전 반핵운동가, 도시빈민운동가, 직업혁명가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는 원고 없이도 연설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일정치인 중 하나였다. 1999년엔

‘올해의 본회의 연설’ 수상자였을 정도로 대중연설을 잘했다. 검은 선글라스에

청바지 티셔츠 차림의 첫 의정연설은 독일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허락하신다면

의장님¡ 당신 정말 똥개요” 라는 발언으로 한동안 본회의장 출석금지를 받기도

했다.

1996년 마흔여덟 때 그는 몸무게가 자그마치 112㎏(키 181㎝)나 나갔다. 천하의

그런 미륵돼지가 없었다. 그는 먹는 게 취미였다. 일어나자마자 구운 감자를 먹고

곧 이어 아침식사로 소시지, 치즈, 달걀프라이, 베이컨, 버터와 잼 바른 빵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 전 간식으로 소시지를 먹은 뒤 점심을 또 거나하게 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점심 바로 조금 뒤 간식으로 감자튀김을 먹고 저녁엔 돼지 족발, 소갈비 등으로 배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회의와 일에 파묻혀 살았다. 저녁식사 땐 으레 취할

때까지 마시면서 일과 정치이야기로 날을 샜다. 자는 시간이 고작 2~3시간이나 될까.

그는 모든 에너지를 정치적 성공을 위해 바쳤다.

사람들은 그를  ‘인간나무통’, ‘비곗덩어리’로 불렀다. 식식거리는 숨소리가

그의 귀에도 거슬렸다. 잠잘 땐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결국 어느 날,

13년 동안 같이 산 세 번째 아내가 이혼을 선언했다.

“한심한 인간, 너 이제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달리는 것이지 걷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준비운동을 한답시고 맨 처음 팔굽혀펴기를 할 때는 단 몇 개

밖에 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첫날 500m를 달리는 데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걸음이라도 매일 더 먼 거리를

달리겠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6개월 만에 16km를 달렸고, 18개월 만에 풀코스를

3시간41분36초로 완주했다.

1998년 나이 쉰이 됐을 때 그의 몸무게는 75kg이었다. 이제 그의 취미는 달리기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한 뒤 매일 10km이상 달렸다.

아침은 콘플레이크, 뮤슬리(시리얼 일종), 오렌지나 포도주스를 들고, 점심은 채소와

과일, 저녁은 생선, 샐러드, 파스타로 때웠다. 술 육류 설탕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난 내 자신과 나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새롭게 프로그램화 했다. 이전에 다이어트나

단식 등을 시도했지만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신적 육체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증상만 치료하려 했기 때문이다. 생활프로그램을 바꾸지 않고 배불리 먹는 시스템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살을 빼려고 했다.”

그는 달리면서 고독과 평온함과 명상을 즐긴다. 그는 그 자신의 부처를 만나기

위해 달린다. 그에게 달리기는 자아여행이다. 오로지 그 자신과만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달릴 때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가장 싫다. 명상이 깨지기 때문이다.

수도승 같은 장거리 주자가 되고 싶은 데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저 묵묵히

달리다보면 발걸음의 단조로운 리듬을 타면서 머릿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마라톤을 완주함으로써 나 자신의 ’내적 개조작업‘은 끝났다. 한 개인의 완전한

변화, 완전한 개혁을 이뤘다. 체중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줄인 체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그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 나 같은 극단주의자는 어떤 일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2005년 그의 나이 쉰일곱. 그는 다시 몸무게가 112kg 나가는 뚱보가 돼있었다.

22세 연하인 5번째 부인과 베를린의 최고급레스토랑을 들락거렸다. 언론은 그의 ‘요요현상(단식과

폭식을 거듭하며 몸무게가 줄었다 늘었다 반복하는 것)’을 빗대 ‘요요 요쉬카’라고

비아냥댔다. 사람들은 그의 책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오래 달리기’(Mein langer

Lauf zu mir selbst, ‘나는 달린다’로 국내소개)의 후속으로 ‘내 주변(몸 둘레)

오래 달리기’라는 속편이 나올 것이라며 비웃었다.   

그는 다섯 번이나 결혼했다. 청소년시절 가출소녀와 첫 번째 결혼을 했고, 30대

초반 택시운전사 시절 프랑크푸르트대학 수학과 1학년생 잉에와 두 번째 결혼했다.

그 후 1996년 맹렬여성으로 알려진 힐트루트와의 13년째 결혼생활을 청산한 뒤 곧바로

20세 연하인 금발의 여기자와 4번째 결혼했으나 금세 헤어졌다. 그리고 2004년 22세

연하인 저널리즘 전공학도와 5번째 결혼했다.

2005년 그는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나의 시대는 끝났다. 20여 년 전 난

정치권력과 개인의 자유를 맞바꿨다. 이제 나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싶다”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렇다. 어쩌면 그는 다시 달릴 것이다.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는 이미 그의 책 ‘나는 달린다’에서 말했다. ‘개인 욕망’의 부질없음과 허망함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이 숨 막히는 세상을.    

“난 그동안 나 자신과 내 정력을 쓸데없는 데 낭비했다. 난 달리기를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의 ‘내적 개조작업’을 할 수 있었다. 달리기는 나에게 ‘생체아편’이고

‘행복호르몬’이며 ‘자아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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