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진통제-감기약 슈퍼판매 ‘표류’
의사-약사 싸움에 약심 논의조차 불발
비만약 제니칼(성분명 오르리스타트 120㎎)이나 사후피임약 노레보원(성분명 레보노르게스트렐)
등 전문의약품을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방안과 가정상비약인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등을 약국 외 판매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료계와 약계의
첫 논의는 일단 불발로 끝났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오후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소분과위원회(이하
분류소위) 2차 회의에서 ‘의약품 약국 외 판매’와 ‘의약품 재분류’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의료계와 약사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이날 밝혔다. 회의에는 의료계, 약계, 공익대표가 각각 4명씩, 모두 12명이
참석했다.
회의에 앞서 조재국 소위원장은 “각 이익단체간에 밥그릇 싸움으로 과열되는
양상이 안타깝다”며 “시작은 힘들어도 결론이 잘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 번째 안건인 ‘1차 회의 결과에 대한 보고’에서부터 약계와 의료계가
1시간이 넘는 설전을 펼쳤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박카스 등의 슈퍼 판매 문제와 회의 진행 순서였다.
약계는 “박카스에는 무수카페인이 들어있는데 이는 일반 카페인보다 흡수가 높아
세계적으로도 규제하는 추세다”며 “약국 밖에서 판매하려면 현재 병당 30mg 들어있는
무수카페인 함량을 줄이거나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료계는 “박카스가 40억병 팔린 동안 부작용은 단 10건밖에 보고되지 않았다”며
“이는 약국 밖에서 판매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맞섰다.
두 번째 안건인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과 세 번째인 ‘약국 외 의약품
판매 도입 필요성’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논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양측은 대립했다.
약계는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의료계는
약국 외 의약품 판매가 먼저라고 맞섰다.
약사회는 이에 앞서 20가지 성분 497개 전문의약품을 의사 처방없이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20일 요구했다. 또한 1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안전성이 확보된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충분히 전환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의약외품 분류 결과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약사회 김동근 홍보이사는 20일 “일부 전문의약품은 약사의 복용지도로 충분히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며 “국민의 편의성도 고려해 안전성이 확인된 약은 처방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같은 날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안전성을 문제삼으며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파는 것에 반대하면서 마찬가지로 안전성을 내세우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처방 없이 약국에서 파는 것에 찬성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21일 회의가 끝난 뒤 대한약사회 박인춘 부회장은 "1차 회의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반의약품 44개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한 것에 대해 이번에 강력히
항의했다"며 “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분류소위에서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원래는 이번 회의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약사법 개정이 한 두 번 논의하는 것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닌데다 불참시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피한다는 오해를 받을 까봐 생각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이사는 "기존 일반의약품 가운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이 있지만 의사와 약사, 지역간 갈등으로 번질까봐 이번에는 제출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리스트는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공익단체에서
제시한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 품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소위원장은 "논의의 우선 순위, 앞으로의 회의 참석 여부 등을
논의하느라 회의 자료에 대한 심의는 하지 못했다"면서 "다음 회의부터
의약품 재분류와 약국 외 의약품 판매에 대한 실질적인 토의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의약품 재분류 문제는 현재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벗어나는 영역의 경우 외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3차 회의는 7월 1일 금요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