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 치료법, 윤리지침 만들어 없앤다”
대한의학회, 의료윤리 가이드라인 제정 방침
누군가 개발하거나 도입한 특정 치료법에 대해서 관련 학회나 정부 기관에서 문제를
삼아도 이해당사자가 정치권과 언론의 힘을 업고 강력하게 반발하면 환자에게 그대로
시술할 수밖에 없는 ‘후진적 의료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대한의학회는 한국의료윤리학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 관련 기관들과 협력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의료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15일 오후 ‘새로 도입되는 치료법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33차 종합학술대회 의료윤리 쟁점 토론회에서 대한의학회 임태환 학술진흥이사(울산대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들어올 때 어떤 윤리적 절차를 거쳐야
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권위 있는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대한의학회를
중심으로 관련 학회 및 기관들과 1년 정도 긴밀하게 협조와 토론을 통해 모범안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의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성형(CARVAR, 카바)’ 수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술 환자 선택의 적절성
△이해관계의 충돌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운영의 중립성, 객관성, 공정성,
전문성 확보 △정치적 술수와 언론 플레이 등의 의료윤리 문제점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건연) 임상성과분석실 배종면 실장은 카바의 후향적 연구를
책임 주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근거는 적지만 환자가 받으려고
하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효과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최소 8가지가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 실장은 △과학적으로 타당한 과학연구계획서 작성과 IRB 승인 후 시술 △독립된
연구기관의 자료 관리 △연구관련 자료를 국가기관에 성실히 제출하는 지침 제정
△지침 위반에 대한 적극적 조치 △이해당사자인 개발자를 배제한 다기관 참여 연구
진행 △추적 조사를 위한 공공자료 활용 △내부고발자에 대한 비밀보장 및 보호 △안전성에
대한 관련 당국의 적극적 관리감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예방의학과 박병주 교수는 “카바 수술은 보건연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시술자와 건국대병원 측의 격렬한 항의로 현재 상황을 중재하는 기관이
없어졌다”며 “의학계에서 과학적 검증, 의료윤리를 다루는 조직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의료윤리학과 박재현 교수도 “논란이 되고 있는 시술에
대한 의사들의 입장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냥 넘어가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의사들의 속성상 대다수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긴다”며 “하지만 다수의 의사,
관련 학회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면 일단은 심각하다고 문제를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학한림원 조승열 회장은 “과학적 검증보다 정치적 힘(Political
Power)이 개입돼 아무도 선뜻 나서서 말을 못하는 현실이 참 서글프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의학자들이 이해상충 등 의료윤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 결국에는 신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