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의료소송에 걸리는 잘못 10가지
서울대 이윤성 교수, “정직이 최선”
2008년 김모 할머니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가족들은 “병원에서 과잉진료를
해 피해를 봤다”며 의료과오소송을 제기했다.
의료과오소송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의료과오란 의사가 진료를 하면서 당시
의학지식이나 의료기술의 원칙에 뒤따르는 의무를 게을리 해 환자에게 적절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을 말한다.
서울대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의료과오소송은 의료 과실보다 ‘의사의
태도가 기분 나쁘다’라거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등의 감정적인 문제나
이차적인 목적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1 대한소아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소송에 걸리거나 소송에서 패소하는 의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10가지를 지적했다.
① 의무기록을 자세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의사가 어떤 치료나 처방을 할 때는 환자에게 그렇게 판단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설명한 사실과 내용을 기록한다. 의료과오소송에서는 의사가 합리적으로 판단했는지를
다루기 때문에 의무기록은 만약 의사의 판단이 잘못돼 환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해도
의사를 방어해줄 수 있다.
의무기록은 자세하고 분명하게 작성해야 한다. 만약 의사가 환자에게 석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재판에서 의사가 지시했다고 믿을 근거가
없다. 의무기록이 없다면 의사가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② 설명하고 동의 받는데 충분한 시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모든 환자는 자신의 몸에 할 의료행위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치료에 꼭 필요한
중요한 동의는 종이에 쓰고 반드시 환자가 서명해야 한다. 서명했다하더라도 만약
환자가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동의서의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
만약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그 내용과 함께 의사가 환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③ 무언가 잘못 됐을 때 마음대로 의무기록을 고친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무기록을 고치면 의사가 무언가 감추려는 잘못이 있었다고
믿게 해 소송에서 지기 쉽다. 그렇다고 의무기록을 검토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검토한 뒤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추가로 수정하는 내용과 수정한 이유, 수정한
날짜, 수정한 사람의 서명을 남겨야 한다.
④ 의사가 지시하면 환자는 잘 따를 것이라 믿는다.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검사를 하라거나 다른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으라고 지시하고
난 뒤 환자가 그 지시를 따랐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살펴 내용을 기록에 남긴다.
⑤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다.
진단이 잘못된 것과 관련된 소송에서는 검사 결과가 빠진 것이 문제가 된다.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알린다면 무엇을 검사했는지, 언제 검사했는지, 검사 결과는 어떤지,
그 결과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필요하다면 추가로 진료를 받아야 할지 알려줘야
한다. 전화로 알릴 땐 환자 본인에게 직접 알리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해서 연락을 하지 않는 것도 안 된다. 환자는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통보를 받아야 한다. 또한 검사 결과가 비정상이면 의사는 직접 환자에게
알려줘야 한다.
⑥ 처방할 때 과거에 진료한 기록을 참조하지 않는다.
환자가 특정 약에 과민하다면 의무기록에 요약하거나 눈에 잘 띄게 표시하고 의사나
간호사는 약을 처방하거나 투약할 때 이중으로 점검해야 한다.
⑦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거나 지시한다.
환자의 상태, 몸짓, 증세 등은 진단에 매우 중요하므로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환자 스스로 생각하는 증상은 부정확할 수 있으며 특히
심장 발작이나 뇌졸중 증상이 있을 땐 매우 위험하다.
만약 전화로 지시한다면 지시한 다음 반드시 다시 확인해야 하고 환자가 말한
내용과 지시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
⑧ 환자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송 사건에서 의료사고 자체보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의사를 믿고 좋아하는데 의사를 고발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소송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환자를 존중하며 특히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⑨ 어떤 환자든 몇 분만 진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많이 진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의사가 자신을 '빨리 빨리'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때 사고가 생기면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증상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처음 대하는 환자나 심각한
환자라면 더 많은 시간을 내 진료해야 한다.
⑩ 환자가 불평하거나 사고가 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소송을 제기한 환자들은 대체로 '왜 사고가 났는지' 이유를 궁금해 하는데 대부분
의사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직접 환자를 담당한 의사는
자신이 선택한 진단과 치료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합병증이 생긴 이유와 앞으로
할 일을 밝혀야 한다.
의사들은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면 환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오히려 환자 측은 솔직한 대답을 듣지 못했을 때 소송을 제기하는 경향이 크다.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직이 최선이다.
만약 심각한 잘못이 있어 소송을 피할 수 없다 해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환자 측의 분노를 줄일 수 있고 소송에 가더라도
의사가 진심으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뜻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사과가 반드시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사과를 하기 전에 변호사
등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잘못' '실수' '우연한 사고' 보다 “환자의
상태가 이렇게 돼 가슴이 아프다”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