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B는 기관친목위원회?
[칼럼]박양명 기자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의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성형(CARVAR,
카바)’ 수술에 대한 논란을 접할 때마다 6년 전의 황우석 사태가 떠오른다.
황우석 사태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황 박사의 연구를 윤리적으로 감시, 감독해야 할
서울대 수의대 IRB는 황 박사와 친분 있는 인사들로 가득했다.
당시 서울대 수의대 IRB는 황 박사의 의도대로 줄기세포와 연구소 운영에 관련된
사안들을 추인하는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했다. 서울대 수의대 IRB가 ‘황 교수팀의,
황 교수팀에 의한, 황 교수팀을 위한’ 기관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IRB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독립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IRB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가 아니라 기관친목위원회(Institutional Relationship Board)라는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
송 교수의 카바수술 안전성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월2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의평위)가 카바수술이 기존 수술보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떨어진다면서도 수술을 계속 하도록 허용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당시 의평위는 엄격한 잣대로 전향적 연구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더했다. 전향적
연구란 지금부터 대상 환자를 추적 관찰하는 것으로 현시점에서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조사하는 ‘후향적 연구’와 구분된다.
송 교수는 카바수술의 전향적 연구를 위해서 건국대병원 IRB의 심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RB는 과학자가 임상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연구 계획과 연구결과
보고방법 등을 심의하는 기구이다. 연구자는 이 위원회에서 연구에 대한 윤리성
등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송 교수는 “과거 서울아산병원의 IRB를 통과했던 사안이라 건국대병원의 IRB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다가 수술을 계속 하기 위해 이번에 IRB 심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국대병원 IRB가 황우석 사태와 마찬가지로 연구자를 돕기 위한
IRB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기자의 기우일까?
건국대병원은 지금까지 송 교수를 적극 지지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건국대병원은
한국보건연구원의 카바수술 자료 요청에 대해 ‘협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공식 배포하기도 했다. 또 카바수술의 부작용을 보건당국에 보고하고, 학계에 논문
보고한 같은 병원의 동료교수 2명을 해고한 뒤 고집스럽게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카바수술의 전향적 연구가 올바르게 평가받으려면 가장 기본에 속하는 건국대병원
IRB의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법윤리를 전공하는 교수는 “IRB는 기관 내 자발적 기구이지만
기관의 이익에 앞서 생명윤리를 먼저 생각하는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IRB 위원이 심의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않으면 위원직을 그만두기까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국대는 황우석 사태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기를 빈다. 학자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2명의 교수를 해직했던 건국대에서 과연 ‘가재가 게편’ 격의 IRB가
아니라 독립성 있는 IRB를 구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