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를 몰아낸 ‘예능’은 일본식 한자어?
쇼 프로그램 베끼다 단어까지 오염
“대한민국 예능인 여러분 함께 갑시다!”
2010년 연말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강호동이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외쳤다.
취지는 좋지만 의아했다. 우리나라에 예능인이란 말이 원래 있었던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연예’라고
불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예능인’이 아닌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연예 프로그램’이나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다.
국어사전에 ‘연예’의 뜻은 ‘대중 앞에서 음악, 무용, 만담, 마술, 쇼 따위를
공연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우리가 오락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한편 ‘예능’은 ‘재주와 기능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따위의 예술과 관련된 능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따라서 요즘 ‘예능’이라 부르는 TV프로그램을 일컬을 때에는 ‘연예’가
의미상 더 적절하다.
‘예능’이라는 말은 일본어 ‘게ㅡ노(芸能,げいのう)’를 그대로 들여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일본 방송의 연예프로그램을 국내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 만들면서부터다.
2000년 즈음만 해도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던 일본식 표현을 왜 굳이 사용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한 블로거는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예능’을 검색해
나오는 기사량을 비교했다. 2001년 53건에 불과했던 ‘예능’기사는 몇 년 만에 엄청나게
늘어나 2008년에는 2만 건을 넘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짧은 기간 동안 ‘예능’이라는
말이 한국의 방송과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이미 사람들의 귀에도 이질감 없이 들릴 정도로 일상에 자리 잡은 ‘예능’, 이대로
써도 좋을까.
국립국어원의 김형배 학예연구관은 “언어란 어차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며
“별다른 거부감 없이 쓰이는 말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언어학 발전에도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한자어는 원래 우리말이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말인
것을 알고 우리말 표현을 쓴다면 좋겠지만 굳이 잘 쓰고 있는 말을 억지로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연구관은 “듣는 순간 일본어임을 알아챌 수 있는 말은 거부감이 일어나므로
삼가야한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자료를 보면 지상파
오락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간지’ ‘이빠이’ ‘또이또이’ 등 일본말을 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해 심의에 걸린 기록이 있다.
‘간지’는 일본어 ‘感じ(かんじ)’에서 온 말로 ‘느낌’이라고 써야 하고 ‘이빠이’는
상황에 맞게 ‘가득, 매우’ 등으로 바꿔야 한다. 같다는 뜻의 일본어 ‘とう’에서
생겨난 말인 ‘또이또이’는 ‘같다’ 정도로 고치는 것이 옳다.
예능, 간지 등은 방송에서 퍼뜨린 일본어다. 방송의 힘은 이처럼 세다. 방송인들이
단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골라 써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