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손이 간다? ‘음식에 중독된 것’
박용우의 리셋다이어트
비만인구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는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아직도 부지런히 헬스클럽 다니면서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과식을 피하고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음식을 과감하게 끊으면 쉽게(?)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음식섭취량을 반으로만 줄이면 누구나 쉽게 살을 뺄 수 있을까요?
비만인구의 증가는 가공식품의 소비량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설탕,
액상과당, 트랜스지방, 나트륨 등 각종 식품첨가물이 음식을 통해 몸에 들어오면
몸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생물학적인 ‘중독’을 일으킵니다.
브로콜리를 가득 쌓아놓은 접시와 감자 칩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접시가 있다고
합시다. 깨끗하게 비워지는
접시는 감자 칩이 가득 담긴 접시일 겁니다. 브로콜리에 중독되어 깨끗이 먹어치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감자 칩, 쿠키, 아이스크림은 접시가 빌 때까지 먹습니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술 한 잔을 마시게 한 다음 “이제 더 이상 술을 안 마신다”는
의지력을 보이라고 하는 게 쉬운 일일까요?
뚱뚱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티라미슈 케이크를 딱 한 숟가락만
맛보게 한 후 이제 더 이상 먹지 말라고 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먹으면 살찌니까
먹지 말아야 해’하는 의지력의 메시지보다는 쾌감중추를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손이 갑니다. 결국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흡연이 폐암과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담배를 끊지 못할까요?
술 마신 다음날 힘들어 하면서도 사람들은 왜 또 술을 마실까요?
주중에 일하면서 커피를 대여섯 잔 마시던 사람들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이유
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카페인 금단증상 때문인데요.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 같은 물질은 생물학적 중독을 유발해서 신체 증상을 나타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케슬러 박사는 당분, 지방, 소금의 절묘한
조합이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해서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 맛 때문에 받은 오감의 느낌과 즐거움은 학습과 기억을 통해 그대로 뇌에 각인됩니다.
음식을 보지 않아도 생각나고 음식이 눈에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손이 갑니다. 과거에
먹어봤던 음식이 입 속에 들어와 미각을 통해 뇌에 신호가 전달되면 다음부터는 그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음식중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습관은
우리 몸의 ‘식욕조절’과 ‘에너지밸런스 조절’ 기능을 왜곡시켜서 비만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음식에 대한 탐닉이 단순히 ‘의지력 부족’ 때문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중독’을 본인 스스로 알아서 치료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음식중독’도
정신질환 측면에서 접근해야
‘중독의학저널(Journal of Addiction Medicine)’에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만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범주에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약물중독과
마찬가지로 ‘음식중독’이나 ‘폭식장애’ 같은 정신신경학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강박적, 충동적 욕구를 치료하고 약물남용과 마찬가지로
음식 과잉섭취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만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의 30%가 폭식장애를 앓습니다. 마약이나 음식을
탐닉하는 중독 역시 유전과 환경 요인 모두 작용합니다. 마약이든 음식이든 여기에
탐닉하게 되는 건 뇌에서 느끼는 ‘보상(reward)’ 때문입니다. 그런데 폭식이나
음식중독으로 인한 비만 환자나 마약중독 환자는 유전적으로 뇌의 쾌감중추에 있는
도파민수용체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활성이 더 증가한다는 겁니다.
비만의 원인에 폭식이나 음식중독이 함께 섞여 있다고 본다면 비만치료를 그저
칼로리 계산으로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하라는 처방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실제 대부분 비만치료를 ‘저칼로리 식사+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비만인구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람도 3년 이내 95% 이상이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비만치료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뜻이지요.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적게 먹으라는 치료는 약물중독 환자에게 그냥
약 먹지 말라고 말하고 방치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금단증상 때문에 고생하고 결국
다시 약을 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 중독도 금단증상으로 고생하다 결국 더
많이 먹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비만치료에 인지행동치료가 포함되어야 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특히 폭식이나
음식중독이 동반된 환자에게 강박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치료하고 자기통제력을 키워주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약물치료도 중요합니다. 자기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겐 니코틴이
혈액으로 조금씩 들어가게 하는 니코틴 패치도 처방하고 금연치료 보조약물도 투여합니다.
마찬가지로 단 음식을 끊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포도당이 조금씩 혈액으로 스며들게
하는 ‘슈가 패치’가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폭식증이나 강박적 과식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프로작 같은 우울증약이 도움 됩니다. 식욕억제제인 펜터민 같은 약물도
체중감량 뿐 아니라 폭식 빈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간질 치료제로 알려진
토피라메이트도 폭식장애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운동도 도움이 됩니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운동이 뇌의 도파민수용체의 활성을
증가시킵니다. 제가 요즘 강조하는 피트(PHIT, 박용우박사의 고강도인터벌운동의
약자)운동처럼 고강도 운동을 하면 도파민을 포함한 카테콜라민 분비가 저강도 운동에
비해 더 많이 증가합니다. 이것이 폭식 증상이나 음식중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임상 경험으로는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비만’이 질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비만환자들을 치료해오면서 폭식과 음식중독의 늪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분들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