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와 비만, 그 알쏭달쏭한 관계(1)

박용우의 리셋다이어트

송년회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술은 빼놓을 수 없는 메뉴죠. 음주는 비만의 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남성의 비만원인은 음주보다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제목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 표현에는 기존에 우리 사회에서는 음주를 남성 비만의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술은 스트레스와 외식, 운동부족에 비해

남성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돼야 할 근거가 적습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 2~3회 이상 음주하는 사람이 비만이 될 확률이 약간 높기는

했지만 음주는 비만의 주요인은 아니라고 합니다.

‘술 마시면 살이 찐다’가 맞는 말일까요?

배나온 남성은 십중팔구 불룩 나온 배를 툭툭 치면서 “당연하지. 이게 다 술

때문에 찐 살인 걸~”하고 말하겠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술을, 그것도 독한 양주나

폭탄주를 매일 마셔대는 일부 여성들은 왜 살이 찌지 않는 걸까요?

알코올은 1g당 7칼로리를 내는 고칼로리 식품입니다. 소주 1잔에 70칼로리, 양주

1잔에 100칼로리, 생맥주 1잔에 200칼로리를 냅니다. 양주 3잔만 마셔도 가볍게 밥

한공기를 뚝딱한 것과 맞먹습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면 식사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식사시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때보다 식사량이 늘게

됩니다.

알코올이 몸 안에 들어오면 간에서 지방을 태우려는 대사과정을 억제하면서 오히려

지방을 합성하는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따라서 뚱뚱하지 않아도 지방간이 될 위험이

높아집니다.

술을 마시면 살이 찌는 건 당연하겠다 싶으시죠? 그런데 장기간의 임상연구 결과들은

논문작성 과정에서 술이 체중 증가를 가져 온다는 확실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팀이 성인의 음주량과 10년 후 체중변화를 보았더니

연관성이 없습니다. 즉 술을 많이 마신다고 체중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성인 여성 약 5만명의 체중을 8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결과를

보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여성보다 오히려 ‘적당량’ 음주를 하는 여성의 체중증가

폭이 더 작았습니다. 여기서 ‘적당량’은 하루 30g 미만의 알코올 섭취량을 의미합니다.

소주 반병, 맥주 석잔 정도의 양입니다.  

이 논문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하루 30g 이상 과다한 음주를

하는 경우에도 의미 있는 체중 증가는 35세 미만의 젊은 여성에게서만 관찰되었습니다.

또 하나,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습관적 음주자’보다 어쩌다 한번 폭음(하루 70g

이상 알코올 섭취)하는 사람들이 같은 양의 술을 마셨는데도 체중증가 폭이 훨씬

더 컸습니다.  

술의 종류에 따른 차이는 어땠을까요? ‘적당량’ 술을 마시는 여성은 맥주나

와인이 위스키보다 체중변화가 더 적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와인과 맥주는 대개 식사와

곁들여 마시기 때문에 천천히 마시게 되고 알코올이 음식으로 인한 열 발생(식사도중이나

식사 후 에너지소모량이 늘어나는 것)을 더 강화시켜주기 때문에 체중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음주를 심하게 할 경우 같은 양의

알코올을 마셔도 위스키보다 맥주나 와인이 체중증가를 더 많이 일으킨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알코올로 얻은 칼로리는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우선 알코올로 얻은 칼로리는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다른 연료보다 먼저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술을 백화점 상품권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백화점에

가면 현금보다 상품권을 먼저 사용합니다. 상품권이 없었다면 사용했을 현금은 지갑에

그대로 남아 통장에 들어가겠죠. 결국 술 때문이 아니라 술과 함께 먹는 음식 때문에

비만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되네요.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소화, 흡수, 대사가 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합니다. 알코올은

에너지의 15% 정도가 소화 흡수 대사 과정에 사용됩니다. 물론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술로 인한 열 발생은 증가합니다. 에너지소비량이 늘어난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알코올은 그 자체로 열 발생 효과가 있어 이것이 에너지소비량을 증가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적당량의 음주는 인슐린저항성(복부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을 개선시키고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를 높여준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면 체중은 늘지 않는데 배는 나온다?

최근 스웨덴 연구팀이 노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이 인슐린저항성을

개선시키지는 않으면서, 오히려 과다 음주자에게 복부비만 위험만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주량과 체질량지수(BMI.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복부비만의 기준이 되는 허리둘레는 음주량이 많을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알코올 섭취량이 하루 15g 늘어날수록 허리둘레는 1cm 더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결과가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만

관찰되었다는 점입니다.

정리해보면 ‘술을 많이 먹는다고 체중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닌데 배는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술을 마셔도 체중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은 이유는

‘근육량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면 지방대사에 교란이 생기면서 복부에

지방이 축적됩니다. 그런데 근육단백질의 손실이 함께 일어나니까 배는 볼록 나오면서도

체중계의 눈금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과체중인 사람보다

체중이 그다지 많이 안나가는 사람에게 훨씬 일반화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박용우의 견해는?

술배가 나오는 건 주당이라면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술만으로는 체중이 확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연구결과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부턴 제 개인적인 생각을

밝혀 보겠습니다.

저는 술을 많이 마시면 체중이 늘고 뱃살이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경험으로도

그렇고 임상 경험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사실’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연구결과는 일치되지 않는 걸까요?

대개 이런 연구는 설문지로 데이터를 얻습니다. 일주일에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는지,

한 번에 얼마나 마시는지를 기록하게 해서 통계를 돌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저녁 먹으면서 소주 2병 마시고 2차 가서 생맥주

2잔을 마셨다면 알코올로 약 160g을 마신 셈이 됩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볼 때는

괜찮은 것 같지만 주2회 정기적으로 마실 경우 계산하면 하루 평균 45g을 마시는

것(160g x 2회/주 ÷ 7일)으로 ‘적당량’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온다면 어떻게 쓰겠습니까?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라도

매번 음주량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음주량을 ‘정확하게’ 써넣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죠. 이 경우 실제 음주량보다 적게 기입(underreport)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의

경우에도 설문지에 작성할 때에는 주량을 최대 ‘소주 2병’ 정도로 써 넣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하루에 70g 이상 마시는 ‘과다 음주자’들만 대상으로 해서 데이터를

돌려보면 체중과의 연관성이 뚜렷합니다.   

다음으로 술과 함께 먹는 음식이 중요합니다. 살이 찔까봐 식사량을 줄이면 근육단백질의

손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근육량은 줄고 지방량은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체지방률(체중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정도)은 늘지만 체중계 눈금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식사를 충분히 하면서 술을 마시면 잉여에너지가 지방으로 축적되므로 체지방률도

늘고 체중도 증가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알코올은 그 자체가 지방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것을 억제해서 지방축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연구 참여자에게 보드카 1잔(90칼로리)과 레모네이드 1잔(90칼로리)을 마시도록 하고

여러 시간 동안 체내 지방연소량을 재보았더니 보드카를 마신 경우 73%나 감소하였습니다.

알코올은 탄수화물보다도 강력한 지방연소 억제제인 것입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럼 술은 어떻게 마셔야 할지, 술을 마시면서 과연 몸짱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음주와 비만, 그 알쏭달쏭한 관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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