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잃은 어른, 맛있는 배아미-현미 어때요?”
전기압력밥솥도 현미용 선보여
주부 김성희 씨(45)는 요즘 시댁과 친정에 전화 거는 것이 즐겁다. 당뇨병이 있는
시아버지와 고혈압으로 약을 복용하는 친정아버지 모두 “보내준 쌀 덕분에 생기가
나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칭찬하기 때문.
김 씨는 지난 설날에 두 분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귀경했다.
그는 주위 추천으로 매달 배아미(胚芽米)를 보내고 있는데 처음 보낸 지 한 달 뒤부터
밝은 소식을 전해온 것. 김 씨는 이번 연휴에 다른 친척에게도 배아미를 선물할 예정.
김 씨는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집까지 배달을 하지만, 처음에는 건강과 정성을
보여주고 싶어 승용차에 싣고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도 말도 덜도 말라는 한가위, 많은 사람들이 귀성길에 오르며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30, 40대들은 “여전히 건강한 얼굴이어야 할 텐데”하며
기대하지만 세월은 희망을 저버리기 일쑤다. 특히 만성질환을 앓는 부모님들을 보면
곁에서 건강식이라도 챙겨 드려야 할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다. 이럴
때 건강한 식생활 개선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건강 쌀’은
의외로 좋은 추석 선물이 될 수 있다.
서구에서는 백미(白米), 백분(白粉)이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탄받으면서
현미, 통밀 등 ‘전곡류’가 건강 보증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는 ‘전곡류(Whole Grain)’의 건강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곡류는 현미, 통밀, 귀리, 옥수수 등이 있으며 식이섬유,
항산화제,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해서 각종 암과 소화기질환, 잇몸질환, 심장질환,
당뇨병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곡식을 찧어 하얗게 만든 것은 보관과 유통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몸에 좋은 영양소를 없애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영양소를
보존하는 전곡류가 각광을 받게 된 것.
그러나 현미는 백미에 비해 질감이 거칠고 맛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이가 약해지는 어르신들에게 여러 번 씹어 소화시켜야 하는 현미는 매일 먹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현미의 단점을 극복하는 여러 방법들도 선보이고 있다. 인터넷 요리
블로그 등에는 현미로 백미만큼 맛있게 밥을 짓는 갖가지 요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현미의 영양과 백미의 맛이라는 두 가지 장점을 살린 쌀들이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쌀의 핵심 영양성분인 쌀눈만을 남겨둔 배아미와 싹을 틔워 질감을
다소 부드럽게 한 발아현미를 추석 선물로 찾는 ‘효자 효녀’가 적지 않다.
▽현미밥 맛있게 만드는 밥솥
현미에
익숙해지기 위해 가장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백미와 섞어서 밥을 짓는 것이다.
처음에는 5%정도만 현미를 넣었다가 서서히 양을 늘려 나간다.
현미밥을 부드럽게 지으려면 오랜 시간 불리는 것이 필수이다. 반나절 이상 물에
담가 두는 것이 좋다. 또한 밥물은 현미와 물을 1:1.5로 맞춘다. 백미의 1:1.2보다
조금 넉넉하게 잡는 셈이다. 고온으로 단시간 조리하는 압력솥이 현미를 푹 익히기에
좋다. 뜸은 20~30분 정도 들인다.
압력솥은 무겁고 폭발 위험도 있어 혼자 사는 집에서나 젊은 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나오는 웅진 쿠첸(1588-5100), 리홈(1577-2797), 쿠쿠 등의 전기압력밥솥은 마치
전기밥솥처럼 타이머를 눌러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기존의 현미밥보다 훨씬 찰기
있는 밥이 만들어진다.
▽건강과 맛이 함께 있는 배아미
백미와 섞는 수고가 덜하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 요즘 유명세를 타는 상품이
배아를 살린 채 도정한 배아미이다. 배아미는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쌀알에 씨눈이 50% 정도 남도록 하고 현미의 왁스성분 표피를 기술적으로 제거해
만든다. 이 과정에서 소화흡수를 방해하는 껍질의 피틴산이 상당부분 떨어져 나가고
몸에 좋은 씨눈 부분은 보존된다.
씨눈에는 지방질과 단백질이 많고 특히 비타민 B1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가
굉장히 높다. 또한 각종 필수 지방산과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있어 쌀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로도 불린다. 그러나 이 씨눈은 대체로 쌀을 도정할 때 쉽게 떨어져 우리가 보통
먹는 백미에는 남아있지 않다. 많은 농업학자들은 몸에 좋은 쌀눈을 그대로 붙어
있게 하면서 맛없는 표피 성분을 없애는 방법이 없을까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두재균 전 전북대 총장이 개발한 ‘누니네(KND 0707-550-5000)’는 청정지역인 전남 부안군 계화도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배아미이다. 영양성분이 몰려 있는 쌀눈은 살리면서
거칠거칠한 표피를 깎아내어 식감을 한결 좋게 만들었다. 쉽게 떨어져 나가는 쌀눈을
보존해야 하니 그야말로 쌀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담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배아미가 일반 현미나 발아현미에 비해 좋은 점은 짧은 시간만 불려도 밥맛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맞벌이 주부인 최은경씨(35)는 최근 배아미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현미밥이
싫다며 투정부리던 최 씨의 아이들도 배아미 밥은 아주 잘 먹는다. 최씨는 “건강
때문에 현미밥을 쭉 먹어 왔지만 불리는 시간도 신경 써야 하고 솔직히 밥 짓기가
너무 까다로웠다”며 “백미와 현미의 장점만을 합친 쌀이어서 밥을 갓 지은 뒤 냄새부터
다르다”고 만족해 했다.
▽싹을 틔운 발아현미
발아현미는
왕겨를 벗겨낸 현미에 적정한 수분·온도·산소를 공급해 1㎜~5㎜ 정도
싹을 틔운 것을 말한다.
발아곡식은 1993년 독일의 막스 플랑크 식품연구소가 내놓은 연구결과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콩나물에서 콩에 없는 비타민 C 등이 생겨나는 것처럼 각종 곡물이
발아하면 씨앗 상태와는 다른 영양소들이 생긴다. 특히 발아현미에는 비타민 아미노산
효소 SOD(superoxide dismutase) 등 몸에 유용한 성분들이 들어있다.
발아현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식감이 일반 현미보다 훨씬 좋고 소화 흡수가
잘 된다는 것이다. 현미의 소화를 방해하는 피틴산이 인과 이노시톨로 바뀐다. 소화가
잘되고 일반 현미에 비해 한결 부드럽다. 맛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주부들 사이에서는
장세순 발아현미(미력 031-884-7557) 등의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압력솥형 전기밥솥을 생산하는 리홈, 쿠첸 등은 최근 일반 현미에 싹을 틔우는
기능을 도입한 가진 전기밥솥을 출시했다. 밥솥 안에 싹트기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조성, 발아현미를 만들어내는 것. 발아현미가 값이 비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