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사랑하는 교육

어느 날 외래 환자 가운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오셨다. 학교에서 전반적인 학생

상담을 맡고 계신다 하셨다. 진료 후에 그 선생님에게 요즈음 어린이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보았다.

학교문제, 이성친구, 학업성적, 부모와의 대화 문제 등을 예상했으나 그 분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요즈음 어린이들이 상담실을 찾는 가장 큰 주제는 우울증이라

했다. 왜 우울증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다시 물었다. 놀랍게도 어린이들은 그 어린나이에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충격적인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어린이들이 청소년으로 자라고 그들이 나이 들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했다. 오늘도 이 순간 정부 교육청 학교 선생님들은

어린이들의 평균 성적을 높이기 위해 별별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어른들의 노력에 따라 수혜를 입을 아이들은 정작 아무런 희망이 없고 우울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말을 빌자면 한마디로 학교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학교에 가고 학원에 열심히 가지만 그들의 마음은 희망을 앓고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로 오신  선생님에게 제안을 한번 해보았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발굴해 우선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 다시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일선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성적을

더 높이기 위해 운동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는데 거꾸로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대책 없는 대한민국 교육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첫 여성 대법관의 은퇴기사를 보았다. 남편 되는 분도 유명한

변호사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자녀를 정규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안학교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 당시에도 진정한 가르침을 포기한 일반 학교에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내 친구 중에 직업군인으로 은퇴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군인 신분이어서 전국으로

옮겨다니며 살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은 부모와 함께 살며

하는 것이란 믿음으로 서울과 임지 두 살림을 하지 않았다. 세상의 대부분은 이 친구에게

자녀들을 서울에 있는 속칭 좋은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충고했으나 그는 임지가 바뀔

때마다 자녀를 데리고 다녔다.

그 친구는 잦은 전학 때문이라면 대학을 가지 못해도 좋다고 자녀들에게 공언하면서

뜻대로 자녀를 길러냈다. 아이들은 과외도 못했고 시골학교를 전전하였다. 하지만

반듯하게 잘 자라 대학교도 나오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즉 부모가 아이들과 같이

스킨십을 하면서 같이 하는 것이 참된 가족이요 교육이라는 그의 생각이 옳았다.

우리 어른들은 이제 그만큼 교육현장을 찢어놓았으면 되었다.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아이들의 교육에 관여하는 어른들이 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부모는

학교나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보냄으로써 자기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마치 아이들이

눈 앞에 안보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 때 아이들은 심신이 지쳐

죽고만 싶어진다는 것이다.

학교도 지식만 전해주는 장소로만 전락한 오늘의 현상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자도 모른 척 하는 선생님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이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교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교장선생님이나 감독관청은 이런

일선 선생님들이 자부심으로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머슴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학교에서 군림하고 선생님들 위에서 권력자로 나서는 존재여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학급 아이들이 모두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이

될 수는 없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벌주고 차별하는 모습을 행여

비쳐서는 안된다.

학과 공부외에 운동을 잘할 수도 있고 미술을 잘할 수도 있고 음악에 재능이 있을

수 있다. 교육청도 이런 소질 계발을 우선 지원했으면 한다. 과거 연수 차 미국에

머무를 때 본 이야기이다. 지역 교육청에서 바이올린 선생을 각 학교에 순회시키면서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도 부모도 악기를

배운다고 음악대학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성이나 인격 교육에 음악이나 스포츠 등 각자 맞는 소질을 찾아서 권장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덩달아 학부모도 학교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현장에

적극 참여한다.

안동에 가면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 이황선생님이 초가집 서너평 남짓한 마루에서

천하의 인재를 기른 곳이다. 혹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할

운명이었던 나라였다. 파당을 지어 싸우는 양반과 제대로 된 통치자이기를 포기한

임금을 생각하면 안 망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도 안 망하고

임란 후에도 300년이 더 지속된 이유는 퇴계선생이 소금국에 보리밥을 먹으면서도

지극한 제자사랑 정신으로 길러낸 300여명의 제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곳을

바라보면서 교육이나 연구시설이 나쁘다고 투덜댄 우리들이 부끄러웠다.

진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설이나 예산이 아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선생님, 선생님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학교, 학교를 소중히 하지 않는 당국이

문제다. 우리아이들을 사랑하고 선생님들과 학교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그러면 좋은

교육정책은 저절로 나온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영원한 성장과 번영을 보장할 것이다.

이제호(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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