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의 광고심의
의료광고심의, 누구를 위한 요식행위?
“스무살 피부처럼 탱탱하게, 맑고 탄력 있는 당신의 피부, OO피부과”
서로 다른 두 개의 피부과 병원이 이런 광고 문구를 내세워 광고를 한다. 한쪽은
불법이고, 한쪽은 합법이다. 합법 절차를 거친 광고에는 한쪽 구석에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필’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광고심의 사업을 대한의사협회에
위탁했다. 2007년 4월부터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가 개원의를 비롯한 대형종합병원의
광고 심의를 맡고 있다.
병의원이 서로 경쟁하며 자기 병원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매출을 높이려고 말그대로
홍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단지, 신문, 현수막 등 다양한 형태로 광고를 시도하는
곳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의료는 소비자의 생명이 직결되기 때문에 소비자를 현혹하는
문구나 잘못된 정보를 꼼꼼하게 걸러야 한다.
그러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광고 심의속도가 더딘데다, 관련법이 있지만 심의를
거치지 않고도 광고 하는 등 병의원의 법 불감증이 일정 수위를 넘고 있다. 애꿎게도
의료광고심의를 신청하는 ‘착한’ 병원만 수수료까지 내면서 광고 심의를 꼼꼼하게
받는 형국이다. 광고심의위원회가 챙기는 수수료 수입은 한달에 4000만~5000만원,
일년에 4억8000만~6억원에 이른다.
느려터진 의료광고 심의
의료광고심의 신청은 인터넷으로만 할 수 있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까지 신청을 받고 직원들이 검토를 거쳐 심의위원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심의위원들이 모여 구체적인 심의를 한다. 답답한 것은
광고심의를 신청한 후 적어도 일주일을 기다려야 심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 광고내용이
좀 전문적이면 관련 학회 의견까지 받느라 2~3주를 끌기도 한다.
A대학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시의성이 생명인 현수막 광고는 글자 수도 몇자
되지 않는데도 일주일씩 기다려야 하는 것은 효율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에 앞서 광고심의를 신청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문구를 한줄
수정받는데 보름 가량 기다려야 했다. 개원일에 맞춰 광고를 할 수도 없어
발만 굴렀던 기억이 있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정진택 팀장은 “한 달 평균 400~500건의 의료광고를 심의하는데
심의대상을 검토하는 직원이 5명, 심의위원은 18명”이라며 "일의 효율성을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게 홈페이지를 개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 위반하면 징역, 벌금 또는 영업정지
의료법 제57조에 따르면 의료법인 의료기관 의료인이 의료광고를 하려면 미리
광고의 내용과 방법 등에 관하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가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위탁 받았다.
실제 심의를 꼬박꼬박 받고 광고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군구별 병의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 3분기 기준 전국 병원급 의료기관은
1236곳, 의원급은 2만6925곳이다. 위원회가 심의하는 월간 400~500건과 비교하면
병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위원회는 의료광고 심의를 받지 않은 병원을 발견하면 시정요구 안내장을 보내고
행정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바로잡지 않은 의료기관은 1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위원회 5명의 직원들은 일주일에 특정 지역을 선정해 1박 2일로 현장 감시를 나간다.
발품을 팔아 병원 밀집지역을 돌면서 불법 광고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식이다.
이렇게 적발된 병원들에게 안내장을 보내고, 시정이 되지 않으면 행정기관에 고발한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가 적발할 수 있는 불법 광고 대상 선정에 한계가 있다는 것.
결국 법을 지키고 5만원에서 20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꼬박꼬박 내며 광고심의를
거치는 병의원만 손해를 보고 있다. 광고심의를 거치지 않고 미처 인정받지 않은
신의료기술 등을 불법으로 광고하며 손님을 끄는 병의원도 적지 않다.
최근 의료광고 심의 범위를 인터넷과 버스광고로 확대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과대 광고는 철저하고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 병의원도 스스로 자제해야
하지만 광고심의가 실제 효력을 발휘하도록 절차와 인력을 재정비해야 한다. 현재는
요식적으로 수수료만 내고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운영자금을 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