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이면 맛있는 것은 이제 잊어야 하나?
술은 몰라도 고기나 생선 조금씩 먹어도 돼
퇴행성관절염,
무지외반증, 당뇨병성 괴사, 모르는 새 입은 외상, 무좀... 통풍의 주요증상이 발가락
뿌리 부분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앞에 예로 든 질환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통풍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통풍클리닉을 방문하기도 한다.
통풍은 우리 인간이 수천년 전부터 알고 있던 병이다. 현재는 의사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잘 아는 아주 유명한 병이 되었다. 그래서 발가락 뿌리 부분에 통증이
찾아오면 이제는 통풍이 아닐까 의심하며 찾아오는 환자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통풍의 발병 원인, 좀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제 연구가 활발하다.
통풍의 주범인 요산이 통풍 뿐 아니라 혈압을 올리고 콩팥을 망가뜨리며 대사성 증후군
등 다양한 심혈관질환의 원인 또는 악화요인이 된다는 사실도 하나씩 불거지고 있다.
통풍의 정확한 원인과 발병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와 새로운 치료약제의 개발은
전문의의 몫으로 남겨 두자. 대신 통풍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자기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즉 자기몫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이미 많은 대중매체는 통풍하면
식이요법이 중요하다고 외쳐 왔다. 그러나 식이요법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는 잘못
전해진 과거의 의학상식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의미를 갖는 최근 연구결과나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비만과 거리가 먼 어떤 70대 남성분은 통풍 진단 뒤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술, 고기, 생선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고 자랑하시기도 한다. ‘술은 그렇다지만
나머지 맛있는 음식은 조금씩 드셔도 되는데…’ 알려진 권고사항을 잘 따르는 것은
의사로서 감사할 정도지만 여생을 너무 재미없게 사시는 것이 아닌지 가끔 슬그머니
말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술과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원칙이 그렇다는 것”
술과 고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식이요법은 법률 조항일 수 없다. 식이요법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믿음은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당뇨를 굶어서 나을 수 없는 것처럼 통풍도 먹지 않고서 고칠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를 빼고는 식이요법만으로 통풍을 완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물론 식이요법을 잘 해야 먹는 약의 종류와 용량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거나, 기름진 음식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어려운 수준의 식이요법을 권하게 된다.
그러나 통풍의 원인이 되는 요산을 만들어내는 퓨린이 전혀 없는 음식만 먹는다는
것은 힘들기 그지없는 일이다. 퓨린이 없는 음식은 대개 별 맛이 없다. 식이요법
한답시고 과도한 집착에 빠지면 칼로리 균형이 무너져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퓨린이 전혀 없는 음식만 먹는다 해도 혈중 요산은 1~2mg/dL(1데시리터당 밀리그램,
1데시리터는 10분의1리터) 정도만 낮출 수 있다. 치료목표에 도달하려면 식이요법만으론
안되고 결국 요산을 눈에 띄게 낮추는 치료제를 먹어야만 한다.
통풍 환자가 줄이면 좋은 음식
과거에 너무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사실 때문에 통풍의 식이요법에 대한
말들이 과장되거나 부풀려 알려져 있다. 물론 알려진 내용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는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얻은 결과여서 좀 더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준다.
과거에는 어떤 음식을 생화학적으로 분석하고→ 이 음식에는 퓨린이 많이 함유돼
있으니 많이 먹으면 혈중 요산이 증가하고 → 결국 통풍을 촉발한다는 좀 추상적인
결과에 의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최근 미국에서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장기간 연구한 결과가 제시됐다.
5만여명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조사하고 실제로 통풍환자의 발생과 상관관계를
약 12년간 관찰한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 연구의 무대가 미국이어서 음식 종류가 우리가 자주 먹는 것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미국 유학생활 때 대형 식품점에 무슨
우유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지 정말 놀란 기억이 있다. 그냥 한국의 슈퍼에서 흔히
사먹던 우유가 어느 것인지 쉽게 분간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려하면 이 연구 결과도 바로 우리나라 환자들에게 곧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소중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연구의 결론을 하나씩 살펴본다.
1. 확실히 술은 해롭다.
특히 맥주와 양주가 해롭다. 와인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역이용해
어떻게든 ‘와인은 괜찮다’는 말을 의사의 입에서 듣고 싶어 하는 주당이 있어서
당혹하게 된다. 통풍환자에게는 술 종류도 종류지만 양이 문제가 된다. 와인을 맥주
마시듯 많이 마시면 결국 통풍을 더 수렁으로 끌고 간다.
이 연구결과를 설명하면 가끔 인삼주, 매실주, 복분자술 등을 말하면서 마셔도
되는지 안되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주당 분들이 원하는 답은 할 수 없다.
결과에 이렇게 다양한 술이 열거돼 있지도 않다.
2. 종류를 짚을 수 없으나 고기(red meat)와 해산물(seafood)을 많이 먹으면
통풍이 온다.
우리나라의 식생활과 차이가 있어 이 대목도 해석이 어려운데 평소 즐기신다는
전제하에 어떻든 “살코기와 해산물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답변을 한다. 당장
쇠고기, 돼지고기, 흑염소, 사철탕은 어떤지 질문이 쏟아진다.
전복 문어 세발낙지 붕어 멸치 그리고 등푸른 생선은 어떤지 질문이 뒤따른다.
이때도 나는 “평소 이런 음식을 많이 드신다면 좀 줄이시면 좋습니다”라는 원칙적인
답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매일 쇠고기, 돼지고기, 회, 전복을 먹는 사람이 그리
흔할까 하면서도 통풍환자의 식이요법은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다.
3. 탄산음료와 주스를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
최근 탄산음료와 주스는 단맛을 내기위해 과당을 사용한다. 혈중요산을 쉽사리
증가시키고 대사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다.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다.
4. 저지방 요구르트나 저지방 우유는 충분히 먹는 게 좋다.
낙농제품은 통풍발생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번 대형 표본조사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저지방 요구르트와 저지방 우유는 통풍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5. 비타민C를 꾸준히 먹으면 혈중 요산을 낮출 수 있다.
결국 현대의학이 통풍을 확실하게 몸에서 떼어내 버릴 수는 없지만 하루 몇 가지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는 있다. 식이요법으로 잘 받쳐주면
평생을 곁에 있지만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다. 오히려 통풍이
음주를 줄이고, 음식을 가려서 먹게 하고, 적절한 운동까지 하게 해 고마운 ‘건강
파수꾼’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위안을 드린다.
전재범(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