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관절염, 천형(天刑)이란건 옛말

일찌감치 병원 찾는 이 늘어 완치율 높다

류마티스관절염, 천형(天刑)이란건 옛말

류마티스 전문의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 항상 듣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다지 먼 과거도 아닌 15년여 전 미국에서 류마티스 공부를 마치고 온 모 교수는

당시 국내에 몇 안되는 류마티스 전문의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절염 환자가 이

교수에게 진료 받으러 왔다.

진료 전날부터 지방에서 와 병원 문 앞에 줄서서 기다리는 환자, 예약을 안 하고

무턱대고 찾아오는 환자, 무조건 응급실로 오는 환자, 다른 과로 입원한 다음 살짝

전과(轉科)를 하는 얌체환자, 각종 진료 청탁 등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 병원직원 중에서는 진료대기표 암표도 팔아 한 몫 챙겼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환자는 왜 또 그리 많은지! 어디에 이 많은

환자들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휠체어에 앉을 수도 없어 침대에 누운 채로 오는 환자도

많았다.

‘류마티스 전문’ 진료가 시작되기 전까지 류마티스 관절염은 불치병으로 여겼다.

환자들은 제대로 된 진료를 못받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환자들은 손발가락이

틀어지고 무릎이나 팔꿈치도 굳는 지경까지 가는 게 흔했다. 물론 혼자서는 거동조차

불편했다. 천형(天刑)으로 알고 집에 숨어 지냈던 시절이었다.

2010년 똑같은 병원. 류마티스 병원이라는 간판만 없다면 환자들의 모습은 일반병원과

전혀 차이가 없다. 휠체어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오는 환자도 보이지 않고 멀쩡히

걸어다니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 조기 진단하면 완치율 높다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한 정보를 환자들이 쉽게 접하고 의사의 진료기술도 발달해

류마티스 관절염을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조기진단이 조기치료를 유도해

완치율도 향상되고 있다.

“두 달 전부터 손가락 관절이 약간 아프기 시작하더니 한 달 전부터는 양쪽 손목도

아프고 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먹 쥐기가 힘들어요. 4개월 전 첫째 출산 후부터

이런 것 같아요”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관절 통증을 호소하며 빨리 병원을 찾아온 오성미(32,

가명) 씨. 진찰하는 동안 뒤에 서 있던 남편이 다른 병원에서 한 혈액검사와 X선

검사 결과를 건넨다. 살펴본 결과 류마티스인자가 양성이며 손X선은 정상이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지만 다행히 관절 변형은 일어나지 않은 초기인 것이다. 오성미

환자는 6개월간 치료받은 뒤 관절통증 없이 남편과 아기와 오순도순 살고 있다.

피검사가 정상인데 아프면 X선-초음파 검사도

스트레스 때문에 술과 담배를 항상 함께 하는 증권맨 김수철(45, 가명) 씨. 6개월

전부터 오른쪽 두번째와 세번째 발가락이 바닥과 맞닿는 부분에 통증이 있었다. 가까운

병원에서는 발가락에 생긴 통풍이라는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피검사를 해도

류마티스인자는 안 나온다는데 이번에 꼭 원인을 알아야겠다고 한다.

글쎄 뭘까? 나도 궁금하다. 만지면 통증이 있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일단

다시 혈액검사와 발 X선을 했지만 모두 정상. 초음파로 발 부분을 관찰했다. 관절을

둘러싼 활막이 두꺼워져 있고 관절액이 증가돼 있으며 뼈의 일부가 깎여져 나가 있었다.

결론은 ‘혈청음성 류마티스관절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4명 가운데 한명은 류마티스인자를

검사하는 피검사에서 양성이 아니라 음성을 나타낸다. 이런 경우는 전문가도 판단하기

어렵다.

류마티스는 류마티스 관절염만이 아니예요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똑부러지는 다부짐으로 중소기업에 취직한 똘똘한

나혜진(28, 가명)씨.

“선생님, 저는 서너달 전부터 손가락관절이 아프고 전신이 쑤셔요. 처음에는

열도 나고 입이 헐어 감기 몸살인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래가네요. 류마티스 관절염인가요?”

진찰 후 혈액검사, 소변검사, X선검사를 하고 1주일 후에 만나 결과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5분 뒤 진료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선생님, 진료비가 왜 이렇게 비싸요? 류마티스 관절염 검사만 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네, 혜진씨의 증상은 류마티스 관절염일 가능성도 있지만 전신루푸스, 섬유근통증후군,

베체트병과 같은 다른 류마티스 질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특수혈액검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결과 나오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이해를 좀 하는듯 하지만 마뜩찮은 표정이 남아 있다.

젊은 여성의 경우 나이든 사람보다 고려해야 할 질환이 많고 놓칠 경우 병의 경과가

심해질 수 있어 검사가 좀 많을 수 있다. 예전에 대기업 TV광고카피 중에 ‘숨어있는

2인치를 찾아라’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경우가 딱 그렇다. 숨어있는 몇 % 안되는

질환이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그런 상황.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관절에 통증이 있거나 부을 때 △손목 관절염 △좌우대칭성으로

관절염 발생 △세군데 이상 관절염 발생 등의 증상이 4주 이상 지속될 경우에 정밀진단을

통해 확인한다. 검사에는 류마티스인자나 항CCP항체와 같은 혈액검사와 X선 검사가

기본이다. 필요에 따라 근골격초음파나 뼈스캔, MRI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돼 조기에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치료성적도

매우 향상되고 있다. 혼자서 속으로 앓지 말고 의심스럽다면 빨리 병원의 전문의를

찾자.

엄완식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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