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스피드스케이팅도 잘하는 이유

500m 금, 1000m 은, 1500m는 뭐?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결전의 순간 긴장감이 머리꼭지까지 올라도

평소보다 더 좋은 기량을 펼치는 사람과 평소만큼 하면 될 텐데 꼭 더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성과를 엮어내는

사람을 향하여 “운이 아니라 그것도 실력”이라고 말한다.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에 발휘되는 실력은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모태범의 역주도 강인한

정신력, 긴장 속에서의 여유와 담담함에서 원인을 짚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피나는 노력이 바탕이 됐겠으나 일본의 나가시마 게이치로를 불과 0.16초(1,2차

합계)차이로 이기고,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에 0.18초 차로 진 상황에서 발휘된 그의

정신력이 더 큰 변수였을 수 있다.

한국사람 모태범이 스피드스케이팅 500m와 1000m에서 금,은메달을 잇따라 캐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모태범의 ‘어중간한’  과거 성적

실제 일련의 경기에서 모태범(21)은 이강석(22)와 이규혁(32)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강석과 이규혁은 2009~2010 국제빙상경기(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나란히

500m 랭킹 1, 2위에 올랐던 반면 모태범은 14위였다. 다른 두 선배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그런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동양인의 한계를 넘어 금메달과 은메달을

거푸 거머쥔 것은 긴장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모태범의 ‘정신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 스피드스케이팅도 잘하는 이유김연아처럼 즐기면서, 담담하게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1000m에서 선수들은 결승점이 가까울수록 표정이 일그러지는

수가 많다. 모태범은 끝까지 표정 변화 없이 빙판을 질주했다. 손과 다리를 휘 젓는

동작도 차가운 빙판처럼 날카로웠다.

21살에 불과한 그가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표범’처럼 경기에

임하는 모습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김연아의 담담함과

비슷했다. 스피드스케이팅 1000m 1위를 한 미국 샤니 데이비스와 경기가 끝나고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를 보면 모태범은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심리학과 최영옥 교수는 “평소 남다른 노력으로 자기 확신에 찬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실전을 연습처럼 할 수 있었던 ‘특권’

모태범은 주종목이 1000m이다. 1000m, 1500m에서 메달기회가 있기에 500m는 실전을

연습처럼 가볍게 할 수 있었다. 경쟁 선수들은 반대로 500m가 주 종목. 이번 경기에서

안되면 메달 기회는 멀어지기 때문에 그 순간에 모든 것을 걸었으나 금메달은 모태범에게

갔다.

부담감 없이 연습처럼 임한 경기에서 모태범은 자신의 실력의 200% 발휘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 교수도 "승리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실전에서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성적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빛난 그의 ‘뚝심’

스피드 스케이팅 1000m 경기는 무난하게 진행됐지만 500m 결승은 정빙기 고장으로

경기가 1시간 반 정도 지연됐다. 최 교수는 “경기가 1시간 반이나 지연되면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500m 경기에서 캐나다 ‘스피드의 영웅’ 제레미 위더스푼 등은 평소 자신들의

기록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1000m에서는 나가시마 게이치로(일본)와 드미트리 로브코프(러시아)의

7조 경기에서 로브코프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지 못하고 300m를 홀로 질주하는

올림픽 사상 초유의 일도 있었다. 로브코프는 후에 다시 뛰었으나 평소보다 기록이

좋지 않았다.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돌발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한다.

뜻밖에 지연되는 시간 동안 경쟁선수들과의 신경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모태범은

이런 환경에서 오히려 평소 자신의 성적보다 훨씬 나은 점수를 냈다. 한번이면 운이

도왔다고나 하지, 연거푸 금 은메달을 캐낸 그의 뚝심은 그를 세계 정상에 오르게

했다.

‘운발’도 무시 못해

1시간 반의 경기지연으로 인해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이 손상된 것도 모태범에게는

득이 됐다. 스피드 대표팀 김관규 감독은 “단거리 선수들은 경기 전 몸이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풀리는데 모태범과 같은 중장거리 선수는 경기지연에 덜 민감하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장거리 훈련에서 축적한 체력은 그의 운과 정신력에 모터를 달아줬다.

언론의 편향적 스포트라이트, “오기가 생기더라”

모태범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내게는 질문도 없어 오기가 생기더라”라고

말했다.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그를 분발시켰다. 언론이

다른 두 선배에게 포커스를 맞출 때 모태범은 훈련에 집중했다.

인하대 체육교육학과 김병준 교수(스포츠 심리학)는 “부담감 주는 언론의 관심과

보도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방해가 된다”며 “국가대표 선수들 방에는 아예 인터넷

선을 연결하지 않는 조치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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