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 공부의 신, 연구의 신?
피부과 전공의 유광호씨, “엄친아 호칭 불편해요”
설 연휴 가족이나 친척이 모이면 늘 “누구네 아들은...” 혹은 “누구네 딸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염장을 지른다. 입학, 취직, 승진, 결혼 등 다양한 주제로 이른
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혹은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설 특급 공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공습에 질릴 대로 질리신 분들에게 미안하게도 ‘엄친아’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중앙대학교용산병원 피부과 전공의 유광호(28)씨는 이른 바 ‘엄친아’다. 스펙으로
따지면 그만한 젊은 의사가 드물다. 전공의 신분에 공부 잘하는 사람만 간다는 피부과
전공, 인용지수가 높은 SCI급 논문을 최근 2년간 18편 게재했다. 4년간 유씨 진료를
받으면서 팬이 된 여대생이 있을 정도로 잘생겼고 성격도 받쳐준다.
유씨는 ‘2년 사이 SCI급 논문을 18편 게재한 젊은 의사’라는 제목으로 중앙대용산병원이
보도 자료까지 만들어 돌린 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제1저자로
쓴 논문들도 공저자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 자기만 언론에 노출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엄친아’ 유씨를 만난 이유는 피부과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한몫 했다.
피부과는 개원하기 위한 전공이라거나 다른 과보다 너무 편해 보인다는 등 일반인이나
다른 과 의사들의 시선이 있다. 그런 피부과 전공의가 밤을 새워가며 거의 한달에
한편 꼴로 SCI급 논문 18편에 제1저자로, 혹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는가?
“피부과는 한가한 게 아니라 연구 시간이 많은 것”
유씨는 웃으면서 “피부과를 선택한 것은 물론 성적이 좋았던 탓도 있지만, 이쪽
연구에 빠졌기 때문이고, 개원 할 생각은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없다”고 주장했다.
피부과는 내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과 비교할 때 응급
환자도 없고 한가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씨는 “연구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일 뿐 결코 한가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보기 위한 준비, 즉 공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주장.
“탈모, 아토피, 피부암 등 난치병 치료하는 의사되고자”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유씨만큼 공부를 오래,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것같다. 그런데도,
인터뷰 내내 유씨는 입만 떼면 ‘연구’ ‘공부’ 타령이다. 유씨의 SCI급 논문 18편은
크게 세분야 질병에 집중돼 있다. 이들 분야의 연관성을 물었더니 난치성 질병에
새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고, 탈모나 아토피 등 특정 질병에 관심을 한정하는 게 아니다”고
한다.
유씨가 같은 병원 김범준 교수와 함께 제 1저자로 참여한 논문 ‘레이저를 이용한
원형 탈모 치료법’ 역시 흉터 치료 목적으로 쓰는 레이저를 원형 탈모 부위에 쐬어
발모 효과를 내는 새 치료법이다.
또 임상종양학회지에 발표한 “특정 피부 증상은 암을 진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지표가 된다”는 논문은 인용지수 17.1을 기록하기도 했다.
“군에서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공부벌레 ‘엄친아’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유씨는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대부분 젊은 의사들이 그렇듯 유씨도 전공의를 마치면 군의관으로
복무한다. 누구나 해야 하는 의무이지만 유씨는 약간 고민이 된다.
현재 군의관의 복무체제는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다. 시간은
많고 편할지 모르나 유씨가 바라는 생활이 아니다. 연구 실적이 인정되는 기간도
최대 3년이라 지난 세월 밤샘한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군의관 3년 동안
그 좋아하는 공부를 못하는 것은 유씨에게는 연예인이 군대갔다 오면 대중에게 잊혀
질까 고민하는 것만큼 절실하다.
“오늘 밤도 연구는 계속 한다”
유씨는 최근 ‘안경테로 인한 알레르기 접촉 피부염’에 대한 새 논문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니켈과 크롬이 원료인 안경테에 상처가 나면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유씨는 계속 연구할 것이다. 진짜 ‘엄친아’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기 보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