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도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
다른 정자와 섞이면 ‘끼리끼리’ 뭉쳐
일처다부제 동물의 경우 단순한 생식세포에 불과한 정자도 협력과 경쟁 같은 사회적인
행동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대 진화유전학과 하이디 피셔 박사팀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쥐와 일처다부제를
유지하는 쥐의 정자를 각각 여러 샘플 채취해 이들 정자를 섞어 놓은 뒤 정자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관찰했다.
관찰결과 일처다부제 쥐 여러 마리의 정자를 섞었을 때에는 원래 주인이 같은
정자끼리 일사불란하게 ‘헤쳐모여’를 하는 반면 일부일처제 쥐들의 정자를 섞었을
때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특히 일처다부제 계열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쥐의 정자를
섞었을 때에도 정자들은 원래 주인별로 끼리끼리 뭉치는 현상을 보였다.
일처다부제의 쥐는 암컷 한 마리가 1분에 여러 마리의 수컷을 상대할 수 있고
한 번에 낳는 새끼들도 아빠가 섞인다. 그만큼 일처다부제의 정자는 다른 수컷의
정자와 피할 수 없는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일단 원래 주인이 같은 정자끼리
뭉치는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부일처제 쥐의 정자는 다른 수컷의 정자와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피셔 박사는 “정자의 머리 바깥 부분에 주인이 다른 정자를 식별하는 것과 관련된
단백질이 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자가 난자를 찾아갈 때 각개격파가 아니라 팀을 짜서 경쟁한다는 것을
밝혀낸 영국 세필드대 해리 무어 박사는 “정자들이 팀을 이뤄 움직이는 것은 수영
속도를 빠르게 할 뿐 아니라 ‘선택’을 받기 위한 정자 나름의 복잡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21일 발간된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고 미국과학
웹사이트 사이언스데일리, 공영 라디오 방송 NPR 온라인판 등이 최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