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업 CEO급 임원도 선택한 자살
고독과 우울함, 지위 오를수록 압박감 심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삼성전자 이모(51) 부사장은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까.
정신과 전문의들은 고위직에 오를수록 심해진 남모를 고독과 우울함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대기업 임원이나 CEO 위치는 직장인들이 부러워하는 연봉과
다양한 혜택이 있지만 업무성과가 신통치 않으면 그만큼 중압감도 비례해 커지는
자리.
자살예방협회 홍강의 회장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다고 자살 위험성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오히려 오르면 오를수록 개인이 갖는 심리적 압박감은
더 크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결정의 최종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선택에 따라
조직의 생존이 달라지기 때문에 책임감도 크다. 또, 자기 지위가 위협받으면 박탈감도
증폭되기 쉽다는 것.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어려움은
모두 지나갔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막힐 때 못견뎌 한다”면서 “자존감이 너무
높으면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정신건강컨설팅기업이 기업의 임원급 400여 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심층심리분석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80%가 ‘개선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83%는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누적돼 있고 우울감도 높았다. 개선 콤플렉스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다.
이들은 실제 우울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가면성 우울을 겪고 있었고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스트레스 수준도 높았다.
대기업 임원들은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끼며 이런 압박감 때문에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도 더 크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사회적 성취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체면을
중시하고 일이 잘못됐을 때 받는 심리적 상처는 더 크다”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이 부사장은 26일 오전 10시반경 서울 삼성동 한 아파트 화단에서
피를 흘린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KAIST 석사학위, 미국 스탠포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199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D램과 플래시메모리 분야의 기술개발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 ‘삼성펠로우’에
선정됐다. 삼성펠로우는 삼성전자의 최고 엔지니어에게 부여되는 명예직으로 단독
연구실과 연간 10억 원 정도의 연구비가 지원된다.
하지만 그도 유서에 ‘업무가 과중해 힘들었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