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인체의 주인, 면역계
척추동물이 뱃속에 있을 때 신경관의 앞쪽에 ‘뇌포(腦胞)’라는
부분이 있는데 나중에 뇌로 바뀐다. 메추라기에서 뇌포를 떼어내 닭의 배(胚)에 이식하면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떻게 울까?
일본에서는 몸의 주인이 과연 어느 부위인지 알아보려고 이런 실험을
했는데, 메추라기와 닭의 잡종, 즉 키메라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한 번 흔들며 삐삐
울지 않고 메추라기처럼 고개를 세 번 흔들고 삐삐삐 울었다. 다만 병아리의 발성기관을
갖기 때문에 소리는 메추라기보다 고음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동물의 주인은 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키메라는
열흘 만에 죽었다. 키메라의 면역계가 메추라기의 뇌를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적군으로 인식해서 무찔러버렸기 때문이다. 이 실험결과를 놓고 면역학자들은
동물의 주인은 뇌가 아니라 면역계라고 주장했다. 신경과학자들은 턱도 없는 실험이라고
반발했지만.
예로부터 사람은 가슴에 마음이 있다고 여겨왔다. 뇌 과학의 발달로
지금 적어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뇌=정신세계’로 생각하는 것이 대세가 됐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은 ‘가슴의 마음’을 ‘가슴 뜨겁게’ 믿는다. 면역학자들은 가슴이
인식(認識)의 중심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신체를 보호하는 군대의 중심이라고
설명한다. 가슴에는 면역계의 본부 격인 흉선(가슴샘)이 있기 때문이다.
흉선은 말랑말랑하고 뽀얀 장기로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T세포를 만들어
혈액으로 내보낸다. 이 과정은 ‘스파르타 교육’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격하다. 건강한
신체에서 생산된 T세포의 96~97%는 흉선의 교육 및 훈련과정에서 탈락한다. 자기를
공격할 수 있거나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적’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포는 모조리
탈락시킨다. 이 과정을 통과한 ‘정예군’이 경찰 또는 헌병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마치 아군임을 나타내는 견장처럼 ‘주요 조직 적합 유전자 복합체’(HMC)라는
단백질을 갖고 있다. 정예군은 ‘견장’이 다른 세포를 솎아낸다. 견장이 다른 세포에는
원래 아군이었던 것도 포함된다.
흉선은 10대 초반에 최대 35g이지만 40대에선 절반, 60대에선 4분의1로
준다. 흉선이 줄어들면서 인체의 면역계에서는 아군을 공격하거나 적군과 동침하는
T세포가 돌아다니게 된다. 면역계가 정상세포를 공격하면 류머티스 질환이 생기고
고장 난 세포나 적군을 죽이지 못하면 암이나 전염병 등 각종 질환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건강의 비법은 면역계가 오랫동안 제 구실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과학자들은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해서 100만분의
1도 모른다. 다만 면역계가 건강의 중심이라는 어섯눈을 떴을 따름이다.
우리는 면역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세한 것은 모르지만 실루엣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면 인체의 조화가 깨지고 이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 과로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평소 안 걸리던
감기에도 걸린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몸 상태가 좋아지면
온갖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투해도 우리의 정예군이 이를 ‘초전박살’ 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공자는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位不知), 시지야(是知也)라고
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앎이라는 뜻이다.
면역력에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얼핏 그럴듯하게 보여도 아무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건강법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인정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불을 보듯 명확하게 보이는 건강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면역력을 지키고 강화하는
지름길이다.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대로 우리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으면, 이 그릇에
무엇인가 담을 여유가 생긴다. 미신이 있던 자리가 합리적인 건강지식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인체의 주인’ 면역계도 미소를 지으며 이런 태도를 환영할 것이다.
이 칼럼은 샘터 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