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낙태 의사 고발”… 논란 점화

“모든 의사가 동참해야” Vs “의사만 희생양?”

30, 40대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 낙태시술 근절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들의 동기와 방법의 순수성에 물음표를 달고 있지만

불법낙태 근절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 역시 적지 않다.

일부 산부인과 개원의들의 모임인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은

11월 1일 오후 3시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낙태 근절운동 선포식을 열 예정이다.

진오비는 “의사들의 자기 합리와, 사회 무관심, 정부 무대책으로 낙태 문제가

수십 년 간 방치돼 왔다”며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의사들부터 자정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최안나 대변인은 “내부적인 갈등과 적지 않은 희생을 각오하면서 뜻있는 의사들이

용기를 냈다”며 “의사들만의 외침으로 끝나지 말고 범국민 운동으로 이어져 낙태

천국의 오명을 씻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진오비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11월 1일부터 모든 불법적, 비의학적

낙태 시술 요구에 응하지 않는 자정 노력을 할 것이며 두 달의 계도 기간을 거쳐

2010년 1월 1일 이후에는 모든 불법 낙태에 대해 사법부의 엄격한 법 집행을 촉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내부 고발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최 대변인은 “일부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임산부가 낙태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체 의사들이 참여해야 낙태 수술을 근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부분의 인공

중절 수술은 비의학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의사 개개인을

엄중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부적절한 임신을 예방하고 계도하는

사회 인프라 구축의 부족, 관계기관의 무대응과 무대책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밝히며

일부 의사들의 극단적인 행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산부인과의사회 백은정 공보이사는 “낙태문제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며 “의사의

노력만으로 없어졌다면 이미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틀에서는 ‘낙태 문제

공론화’에는 입장을 같이 하지만 사법 당국 고발 같은 극단적인 방법 밖에 다른

해결책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 문제를 공론화해 해결하자는 데에는 양측에 이견이 없다. 이 의견에는 정부도

이견이 없다.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 가족건강과 장미경 사무관은 “인공 중절에 대해 시각차가

있고 각계에서 ‘낙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더디게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도 생명 포럼 운영, 법 개정 등을 통해 낙태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을 하고 있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낙태와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 탓, 대한민국은 고임신 저출산 국가

현행법상 인공임신 중절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을 때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전염병에 걸렸을 때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했을 때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이 임신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임신중절의 상당수가 불법이며 법에는 의사뿐 아니라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도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낙태와 관련해 입건된 사람은 모두 64명이며 이 중 정식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5명이다.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 한 해에 34만2000여 건의

불법 낙태가 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출생자 수 45만 명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가 아니라 ‘고임신 저출산’ 국가인 것이다.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가 줄어야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진오비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이들은 산부인과의사회가 임신부에게 진단비용을 지원하는

‘바우처 제도’의 도입을 놓고 정부와 협상할 때 정부와의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강력투쟁하기를 요구하며 의사회 집행부를 비난하던 의사들”이라며 “자신들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느닷없이 낙태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다른 한 산부인과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들 중에서 불법낙태에 반대하면서도

진오비라는 단체는 불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자기들 편이나 아니냐에 따라 낙태

찬성-반대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주도권을 노린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산부인과의사회 측은 또 불법 낙태 근절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의사를 죄인시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 문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잣대는 이미 외국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7일 ‘편견과 싸우는 한국의 미혼모들’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한국을 ‘낮은 출산율을 고민하면서 입양아를 수출하는 나라’로 평가하며

한국 미혼모들은 96%가 낙태를 선택하고 출산한 미혼모의 70%는 입양을 선택했다는

복지부 자료를 소개했다.

이 신문은 “미혼모가 되면 비도덕적이고 인생을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며

“사회적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는 미혼모

인터뷰를 싣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의 장석일 이사는 “사회적 수요가 있는데 의사가 전면적으로 낙태를

거부하면 낙태가 지하로 숨어 결국 임부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면서 “청소년

성교육 강화, 계획임신의 중요성 홍보 등과 미혼모 지원 등과 맞물려 불법낙태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많은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가 돈만 보고 낙태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정부의 출산장려책 등에 따라 불법낙태 시술을 하는

것보다 출산을 유도해서 건강한 아이로 기르는 것이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은 ‘진오비’의 적극적인 낙태 거부 운동이 우리사회에서

낙태를 줄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퍼뜨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신석 추기경은 1일 ‘불법낙태 근절 운동 선포식’에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를 보내 격려사를 대독할 예정이다.

이번 논쟁과 관련, CHA 의과학대학교 차병원 조정현 교수는 “이번 일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낙태의 현실을 짚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낙태

문제를 사회 전체의 현상으로 보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시작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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