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과학적 산업으로 거듭난다?
경희대, 신약개발 목적 한방제약사 12월 설립 전망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근 일부에서 외면 받아온 한약업계가
새로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곳에 연구소, 품질관리시설 등을 두루 갖춘
신약개발 위주 한방제약사가 올해 안에 처음으로 설립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약에 대한 불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심화되는 추세다.
2007년 제일기획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양방보다 한방을 선호한다고 답한
사람이 2003년 50대 47%, 40대 35%였던 반면 2007년에는 50대 35%, 40대 26%로 상당
부분 떨어졌다. 20대 이하에서는 양방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한의학
침체, 위기란 말은 피부에 와 닿는 정도가 됐다. 매년 폐업하는 한의원도 해가 다르게
늘고 있다.
한약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는 ∇비싼 가격 ∇약재 내용을 알 수 없는 점 ∇저질
약재 수입 ∇약재 안전성에 대한 불안 등이 손꼽힌다.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격은 비싸고 대부분이 달여서 만들어지는 탕약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얼만큼 들어갔는지 소비자로서는 쉽게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대에서는
지난해부터 한약의 주요 재료인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 기술, 위생과 안전이 보장된
설비를 갖춘 한방 제약회사 설립을 준비해 왔다. 올 6월 한방약 조제 기술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정보원으로부터 74억원의 기술가치평가를 받고 이에 대한 법원 인증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인증을 받는 대로 경희대 부속 산학협력기술 지주회사를 세워
한방제약회사를 그 자회사로서 설립할 계획이다.
한약이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큰 이유는 탕약이라는 형태 때문이다.
탕 형태로 만들어지는 약은 휴대가 불편할 뿐 아니라 탕 전체가 주성분이기 때문에
개인별로 효과가 좋은 특정 성분을 뽑아낸 형태인 알약에 비해 군더더기 성분이 많고
소비자로서도 성분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신뢰하기 힘들다.
경희대가 설립하는 한방제약회사의
싱크탱크가 될 경희대 한약물연구소에는 한약의 제형(劑形: 의약품의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맞는 형태) 개발과 함께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한약추출기,
건식과립기 등 다양한 제형의 약을 만들기 위한 기기들이 도입돼 있어 건식과립,
캡슐, 트로키제(입안에서 녹는 알약)등 다양한 형태의 신약을 개발 중이며 이미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처방되는 약도 여럿 있다. 경희대학교 한약물연구소 최혁재 상임연구원은
“한방이 지금처럼 비과학적인 측면만 부각되다가는 위기가 점차 더 심화될 것”이라며
“신약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한방 제약사의 설립은 우리나라가 한방분야에 가진
경쟁력을 살려 한방을 과학화하고 한방의 세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한방 관련 식품의 세계시장 규모는 100조원 정도이며 일본이
37%, 미국이 31~34%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5% 이하로 후발주자라고
볼 수 있다.
한의학 위기에 천연물 신약 연구 관심 ↑
탕 조제가 중심이었던 한약이 위기의 길을 걷게 되자 한약의 주재료인 천연물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생약제제과
강인호 연구관은 “천연물 신약에 대한 임상 요청이 2007년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며
“천연물 의약품의 경우 신약보다 허가를 받기 쉬운 개량신약 같은 자료제출의약품이
거의 전부인 상황에서 신약 임상 신청이 해마다 배로 뛰는 등 업계의 관심이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천연물 신약으로 출시되고 있는 제품은 4개뿐으로
동아제약의 스티렌, SK케미컬의 조인스 정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2005년 이후로는
출시된 상품이 없다.
자료제출의약품의 경우도 식약청으로부터 안전성과 효과를 평가받지만 신약의
경우 필수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등 더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필요로 한다.
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한방제약사의 신약 개발이 활성화될수록 한방의학 발달도
가속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한방제약사에서 만일 천연물을 사용한 전문의약품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한의사에게는 처방권이 없다는 점. 최혁재 연구원은 “부가가치가
높은 전문의약품을 개발하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양방 의사만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초기에는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위주로 개발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