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대책, 호주가 모델이라고?
복지부 장관 잦은 실언에 전문가들 비판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신종플루 대책이
면밀한 검토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임기응변식 대책 발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호주는 당초 인구의
20%까지 감염을 우려했으나 백신 없이도 1.7%만 감염되고 사망률도 0.4%에 불과해
계절 독감 수준의 유행을 보였다”며 “이는 백신 없이 개인위생과 항바이러스제만으로도
제대로 대처하면 유행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우리는 여기에 백신까지
추가되므로 그 수준 이내에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마치 정부가 호주의 신종플루 방역시스템 사례를 충분히
검토한 것처럼 보여지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인플루엔자 대책본부 관계자는 “호주에 대한 정보는 확진환자 수와 사망자
수만 세계보건기구(WHO)와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은 호주 대사관을 통해 알 수 있으나 자료를 요청하거나 받은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고위 관계자는 “호주를 따라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던 호주의 결과를 목표로 삼겠다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즉, 정부의 강화된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전 장관은 한국과 호주의
방역시스템의 차이 등 최소한의 정보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발언을 한 셈이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한국과 호주는 인구밀도부터 차이가 커서
전파력이 다를 수밖에 없고 보건정책에 소요되는 예산 규모도 다르다”며 “한국은
호주와 환경, 예산 등 근본적인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려우며 오히려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과 비교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타미플루 특허 정지 발언 번복…국제위상 추락
전재희 장관은 또 지난 21일 신종플루 치료제(타미플루) 특허 정지 조치를 내린
뒤 국내에서 복제약을 대량 생산토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4일 만인 25일 “특허 정지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는 강제 실시권 발동 이후 통상마찰에 미칠 영향, 지적재산권 논쟁, 약을 구입하거나
개발할 능력이 있는 한국에서 강제실시는 국제적 위상에 맞지 않는 다는 점 등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자 말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거점병원 지정·타미플루 투약기준 혼선
거점병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455곳이 지정됐지만 △ 지역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점 △서울대병원 거점병원 지정 혼선 △제대로 된
지침 없이 갑자기 민간병원으로 모든 책임을 넘긴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의 한 거점병원 관계자는 “공간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컨테이너 등
별도 진료실을 운영하고 자원봉사자까지 배치하고 있지만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밖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확진환자에게 투약하도록 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자
확진 없이 의사의 임상진단 만으로 감염이 의심되면 타미플루를 투약하도록 기준을
완화한 것도 일관성 없이 추진한 정부의 오락가락 신종플루 대책 중 하나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455곳을 중심으로 한 거점병원들의 신종플루 대응 준비는 한마디로 혼란이고 진단이나
방역체계도 혼란 그 자체다”며 “ 백신확보에 시급히 나서고 차제에 국영백신공장
시설을 확보하는 등 혼란스러운 신종플루 의료 대응체계를 실질적인 대응능력을 갖추도록
재조직해야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