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일 한꺼번에 하면 바보 돼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신경 빼앗겨 아무 일도 못해

컴퓨터를 켜 놓고 여러 사람과 채팅을 하면서 동시에 이메일을 또 여럿에게 보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멀티태스커’다. 이들이 특출한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미국 연구진이 여러 실험으로 이들의 능력을 증명하려

했지만 결론은 “여러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로 내려졌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클리포드 내스 교수 팀은 멀티태스커 100명을 모아 이들의

능력을 조사했다. 뇌 과학의 연구 결과는 뇌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 한다는

것인데 이들 멀티태스커들에게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첫 실험은 화면에 빨간색 사각형 2개를 연달아 보여 주면서 “빨간색이 위치를

옮겼는지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빨간색 사각형 주변에는 파란색 사각형들이 있었다.

보통 학생들은 파란색을 무시하고 빨간색만 주시했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맞췄다.

그러나 멀티태스커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파란색에 일일이 신경을 쓰느라 번번히

틀렸다.

첫 실험에서 멀티태스커들이 빨간색만 보라는데도 파란색까지 본다는 사실에 착안한

연구진은 그렇다면 여러 가지를 기억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날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두 번째 실험을 계획했다.

이번 실험은 여러 알파벳 글자를 보여 주면서 똑 같은 알파벳이 몇 번 겹쳐 나타나는지를

세는 것이었다. 보통 학생들은 문제를 잘 맞혔지만 멀티태스커들은 하면 할수록 점수가

떨어졌다. 여러 알파벳을 계속 머리 속에 입력하기만 할 뿐 머리 속에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연구진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멀티태스커들이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전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휙휙 바뀌는 게임에서는 잘 하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마지막 실험은 연속적으로 숫자 또는 글자를 계속 보여 주면서 숫자가 나오면

짝수인지 홀수인지, 글자가 나오면 모음인지 자음인지를 맞추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험에서도 멀티태스커들은 형편없었다. 도대체 한 가지 일에 집중을 못 하기 때문이었다.

 

내스 교수는 “멀티태스커들은 쓸데없는 정보를 빨아먹는 귀신 같았다”며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야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외부 세계에든 그들의 마음 속에서든

떠오르는 모든 사실에 신경을 쓰느라고 어느 한 가지에도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려 드는 태도는 결국 뇌의 인지력을 망가뜨린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함으로써, 즉 한 번에 적은 일을 함으로써

더욱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8월호에 실렸으며 미국 온라인 과학뉴스 사이언스데일리,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온라인판 등이 26일 보도했다.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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