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고문 때문에 파킨슨병 발병?
전문가 “가능성 있지만 단정은 곤란”
19일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 씨(61)가
눈에 띄게 야위고 힘겨운 모습으로 나타나 김 전 대통령의 조문객들을 다시 한 번
더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김 씨의 파킨슨병은 고문의 후유증이라고
결론 난 지 오래”라고 보도하자 일부 네티즌이 “파킨슨병은 고문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며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고 반박에 반박이 꼬리를 무는 등 엉뚱한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김 씨의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이라고 예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는 1971년과
1980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온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에 본격적으로 파킨슨병의 증세가 나타났다. 김 씨는
초기에 목 디스크를 의심하고 서울시내 유명 척추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증세에 차도가 없어 고생하다 고교 선배인 의사로부터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2003년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겹쳐 증세가
악화됐고 한동안 의정활동을 할 정도로 병세가 다소 누그러졌다가 2007년 이후 급속히
악화됐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흑질(黑質)이라는 신경세포가 파괴돼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고갈되면서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며 △손이 떨리는 증세가 나타나는 병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기억상실, 강박장애 등이 동반된다. 농약을 비롯한 환경적 문제나
유전적 문제 때문에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발병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심한 외상이나 정신적 스트레스, 특정한 약물, 바이러스 감염, 일산화탄소
중독 때문에 파킨슨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2차성 파킨슨병, 즉 파킨슨증후군이라
한다. 연세대 의대 신경과 장진우 교수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파킨슨증후군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씨는 고문 때문에 파킨슨병에 걸린 것일까? 파킨슨병을 연구해온
신경과 의사들을 취재한 결과 “외상이나 스트레스로 파킨슨병에 걸릴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 역학조사 결과 외상을 받았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파킨슨병에 2~3배 더 많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전적 요인이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를 연구한 결과에서도 2차 대전에 참전해 외상이
있는 사람은 파킨슨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드러났다. 그러나 연관성을 반박하는
조사결과도 있다.
C병원 신경과의 D 교수는 “한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외상을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며 “이것이 파킨슨병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뇌 손상이 심하다면 파킨슨병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외상 정도가 아니라 손상 정도가 굉장히 심각해 뇌가 많이 망가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D 교수는 “가능성의 차원이지만 김 씨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문으로 인한 외상 때문에 파킨슨증후군이 생겼다고 보기가 힘들다는
주장도 있었다. 고문 시기와 발병 시기 사이의 20년이라는 간극 때문이다.
E병원 신경과의 F교수는 “고문을 받은 뒤 바로 증상이 나타났다면 약간의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사이가 길어 연관성이 떨어지는 듯하다”며 다른 요인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김 씨 주위에서는 “김 씨가 고문을 받고나온
직후 다리를 절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누지 못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G대학병원 신경과의 H교수는 “고문 때문에 파킨슨병이 발병한 전례가
없다”면서 “파킨슨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므로 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은 비록 원인이 불명확하지만 뇌졸중, 치매와 함께 3대 뇌질환에
포함되는 흔한 병이므로 김 씨만 독특한 원인에 의해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대통령의 장남을 비롯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파킨슨병’의 조기치료를 위한 계기로
삼는 것이 유익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