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대화한다, 어미-새끼 사이만
식물의 ‘개체 인식과 정보전달’ 처음 밝혀져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나와 남을 구별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 간을 이식하면 이를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한다. 동물에게는 대개 이런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이런 면역반응이 식물에서도 일어나는지는 그간 논란 거리였지만, 식물도 개체를
구분하고 어미 나무와 자식 나무 사이에는 서로 공기를 통해 주고 받는 경우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와 주목 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곤충학과의 리처드 카반 교수와 일본
교토대학 생태연구소의 쇼지리 가오리 박사는 ‘생태학 보고(Ecology Letters)’
최신호에 발표된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미국에 흔한 세이지브러시라는 식물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봄에
X그룹의 세이지브러시에서 줄기를 15개 잘라다가 화분에서 키웠다. ‘새끼 나무’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화분에서 기른 새끼들을 어미 나무 바로 밑에 갖다
놓은 다음 가위로 새끼 나무의 가지를 일부 잘라냈다. 어미가 보는 앞에서 새끼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다.
연구진은 또한 어미-새끼 관계가 전혀 없는 Y그룹의 세이지브러시 나무 밑에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혈연 관계가 없을 때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한 뒤 가을에 X, Y 그룹 나무들이 얼마나 해충 피해를 입었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새끼 나무의 상처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 X그룹의 나무들은 Y그룹의 나무들보다
해충 피해가 42%나 적었다. 자기 분신의 상처를 목격한 X그룹 나무들은 해충에 대해
단단한 준비를 해 피해를 줄인 것이었다. 반면 혈연 관계가 없는 Y그룹 나무들은
아무 준비를 않고 있다가 메뚜기 등에게 더 큰 피해를 봤다는 결론이다.
휘발성 물질로 어미-새끼 나무 의사전달
연구진은 어미-아들 나무 사이의 연락이 휘발성 물질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왜냐하면 어미 나무는 새끼 나무와 물리적 접촉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해충에 대한 대비를 했기 때문이다.
카반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세이지브러시의 한 가지가 상처를 입으면 냄새를
통해 이 정보를 다른 가지에 알려 준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이러한 정보 전달이 혈연
관계에서만 일어나는지, 아니면 모든 세이지브러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려
이번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세이지브러시 나무도 혈연끼리는 협력하며 낯선 개체에게는
무심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세이지브러시 나무에게까지
“위험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적은 사람’이듯
동물이나 식물이나 같은 종끼리 가장 심하게 경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연구는 미국의 과학논문 소개 사이트 유레칼러트, 과학 온라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
등이 20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