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백신, 안전성 확보안되면 재앙”
미국 1976년 플루백신 서둘러 만들었다가 250명 사망
국내 제약사 녹십자가 미국 등으로 공급받은 신종플루 바이러스주를 이용해 백신
시제품 생산에 나섰지만 이에 대해 국내 의학자들은 “백신을 잘못 만들어 접종하면
예방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까지 일으킬 수 있다”며 백신 제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십자는 9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으로부터 신종플루 백신 제조용
종바이러스주를 받았으며 전남 화순 공장에서 시제품 생산에 들어갔다”며 “늦어도
7월부터는 백신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녹십자의 화순 공장도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든 적은 없다”며 “백신 제조에는 신중한
임상시험과 안전성 검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둘러 백신을 만들었다가 재앙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는 1976년 미국 뉴저지 주의
포트 딕스 군 기지에서 일어난 사건이 꼽힌다.
당시 포트 딕스의 군 부대에서 돼지독감이 유행해 200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하자
정부는 다음에 찾아올 대유행을 대비해 긴급히 예산 1억4000만 달러를 투입해 백신을
만들고 이를 인근 주민 등 4500만 명에게 접종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다음해
대유행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백신을 맞은 500여 명에게 신경마비 증세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중 최소한 25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부작용에 대해서는 “백신을 잘못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백신이
운반 도중 감염됐기 때문”이라는 두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서둘러 백신을 만들고
접종하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포트 딕스 사건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서 집단으로 발병한 부작용은 ‘길랑바레
증후군’으로 확인됐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이라는
긴 병명을 갖고 있으며, 신경마비가 몸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특이한 병이다.
팔 다리에 힘이 빠지고 운동성이 떨어지며 심할 경우 호흡곤란 같은 심각한 증세로
발전한다. 대부분 치료가 되지만 영구장애가 발생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포트 딕스 사건 이외에 인플루엔자 백신으로 길랑바레 증후군이 발생한 경우는
아직 없다. 그러나 길랑바레 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지
말도록 권고된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길랑바레 증후군은 2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며 “포트 딕스 사건 당시 원인이 인플루엔자 백신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신종플루
백신 대량생산에 앞서 길랑바레 증후군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백신 제조 기술도 중요하다. 각 제약사가 갖고 있는 노하우에 따라 제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해외에서 만들어진 인플루엔자 백신을 수입해 판매한
적은 있지만 플루 백신 생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 교수는 “백신 제조 과정 중 유정란에서 배양된 바이러스에서 불필요한 단백질을
분리하는 정제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동일한 바이러스주를
전세계에 공급했다고 해서 동일한 백신 제품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신의 안전성 검증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청 생물제제과 김준규 연구관은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는 데 보통 1년이 걸리지만 현재 신종플루처럼 상황이 급할
때는 심사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기도 한다”며 “심사 기간이 단축된다고 안전성
검증을 약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포트 딕스 사건을 통해 백신의 안전성 검증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심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신종플루 백신 대량생산 업체가 녹십자로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다”며
“시제품이 나오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고 만약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판정이 나면 해외 다른 제약사로부터 확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