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스트레스가 ‘반응성 우울증’불러
일반적 우울증과 원인 다르지만 증상 같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일반적 우울증 못지않게 ‘반응성 우울증’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신의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다. 산전수전을
다 거친 전직 대통령도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일순간 우울증이 생기고 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우울증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 이유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겨 기분이 가라앉거나 일상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는 등의 증세가
생기는 데 반해 반응성 우울증은 외부의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갑자기 세로토닌 분비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어린이들이 학교를 옮기면 새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도 일종의 반응성 우울증에 해당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과 박준호 임상심리학 박사는 “4월 말부터 시작된 검찰의
소환 조사 등 일련의 사건은 노 전 대통령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응성 우울증은 갑작스런 자괴감이나 의기소침을 불러오고, 우울한 기분, 흥미
저하, 활력 상실, 과도한 죄책감, 집중력 감소, 자살하고픈 생각 등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보인다.
전 노동부 장관인 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란
책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우월의식’과 ‘이념젹 편집증’이 더해져 국정운영이
외곬으로 치닫게 됐고 탄핵 이후 종종 자제력을 잃고 흥분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종종 ‘퇴임 후 증후군’을 겪게 된다. 인생의
최정점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삶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공허함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과 4월 말부터 시작된 검찰의 소환 조사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노 전 대통령에게 반응성 우울증을 불러 일으켰다는 해석이다.
박준호 박사는 “유서의 내용만으로도 우울증 진단 기준에 해당한다”며 “자살하기
전 극심한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운명이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울 서대문구 허내과 허갑범 원장은 “현직 대통령이라면
각 증상 별로 자문의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상담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퇴임을
하게 되면 본인이 자문을 원하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 관리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