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심리부검으로 원인 밝혀야
자살 원인 객관적으로 알아야 모방자살 등 막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들은 “심리학적 부검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심리학적 부검은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정황을 객관적으로
조사해 정리하는 작업이다. 몸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부검이라면 심리학적 부검은
마음이 자살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을 밝히는 작업이다.
경희대병원 신경정신과 백종우 교수는 “주변 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심리학적
부검의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유가족 등 주변 인물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망자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 쓴 글, 가족이나 주변인이 전하는 고인의
언행 등을 수집해야 한다”고 고 말했다.
심리학적 부검을 통해 자살의 원인이 최대한 충실하게 확인하는 작업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우선 가족의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가족 중에 자살자가 생기면 대개
가족 구성원들은 “내가 막을 수도 있었는데”라든지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다. 그러나 자살에 이른 객관적 상황이 밝혀지면 이런
죄책감을 일부나마 덜 수 있다.
또한 자살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은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자살자가 연예인이나 공인 등 유명인사일 경우 심리적으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쉬운 팬, 추종자들의 모방자살을 막으려면 ‘자살자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함부로 동일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리더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심리학적 부검은 실시돼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러
장애 요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홍강의 회장(서울대병원 명예교수)은
“심리학적 부검은 필요하지만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에 당장 실행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유족과 관련된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과 ‘노사모’ 등 리더 격인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감정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치인,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들은 소소한 개인사까지 모두 노출되고 루머까지
떠돌기 때문에 겉으로는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심리적 압박감이나 고통을 앓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작년 12월 심리학적 부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특히 청소년층의 자살이 잇달자 나온 조치였다. 최근에는
생명인권운동본부 조용범 박사 팀이 국내 최초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 피해를 당한 뒤 자살한 10명에 대한 심리학적 부검을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