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대한 ‘원숭이의 답변’ 화제

“우는 사람 위로하는 침팬지에서 종교 이전 도덕심 보라”

진화론에 대한 ‘원숭이의 답변’ 화제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전세계적으로 진화론이 붐을 이루는 가운데,

영국의 저명한 존 템플턴 재단이 진행하는 ‘큰 질문(Big Questions)’ 시리즈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매년 큰 주제를 정해 저명 학자들이 답변하도록 하는 이 시리즈는

현재 ‘진화론이 인간 본성을 설명해 주나?’라는 큰 질문을 던져 놓았다.

이 질문에는 그 동안 여러 학자들이 답변했는데 지난 4월 올려진 프란스 드 발

교수(미국 에모리대학 심리학과)의 답변은 특히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진화론이

인간 본성을 설명해 주나?’라는 질문에 ‘분명 그렇다고 원숭이가 말한다’란 글을

올렸다. 다음은 발 교수의 답변 요지다.

긴 팔에 털투성이인 선조로부터 인간이 진화했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는 진화론의 절반에 불과하다. 진화론의 나머지

절반은 우리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과 연관돼 있으며, 우리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동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인간 뇌와 침팬지 뇌는 크기만 다를 뿐

사람은 사람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능적인 존재라며 지능적 존재를 지구상에서

찾는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했으며, 오로지 외계에서 비슷한 생명체를 찾아왔다.

최근 수천 년의 기술적 발전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뇌가 비록

3배나 크긴 하지만 침팬지의 뇌와 구성 방식이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뇌에 동물과 다른 특별한 부분은 없다. 우리가 더 똑똑하겠지만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은 유인원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우리처럼 그들도 권력을 잡으려 애쓰고, 섹스를 즐기며, 안전함과 애정을 구하고,

영토를 빼앗느라 죽이고, 신뢰와 협동을 귀중하게 여긴다. 우리는 핸드폰을 쓰고

비행기를 타지만 우리의 심리학적 특징은 사회적 영장류와 다를 바 없다.

신이 없으면 도덕심도 없다고?

사람의 행동을 진화의 산물로 보는 견해는 인간의 도덕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반응은 ‘도덕이 있기에 신은 존재한다’는 주장부터 ‘신이 없다면 인간은

못할 짓이 없다’는 이반 카라마조프(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의 독백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돼 왔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종교가 있기 전까지 우리 선조들 사이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전혀 없었다고 당신들은 믿는가? 동물 세계를 살펴 보면

불공평에 대한 항의, 동료 돕기 같은 도덕성은 심지어 인류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남이 너에게 해 주길 바라듯 네가 남에게 하라’는 황금률은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에 두루 적용된다. 그리고 이 황금률은 동정(다른 존재의 감정에 대한 관심)과

상호성(모두 같은 룰을 따르면 서로 잘 대접받을 수 있다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는 사람 감싸주는 침팬지 동정심의 크기

다른 침팬지에게 공격받은 희생자 침팬지가 있으면 옆에 있던 침팬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 준다. 위로해 주려는 침팬지의 본성은 하도 강해 1백 년 전에 어린

침팬지를 길렀던 러시아의 과학자 나디아 코츠는 관련 기록을 남겨 놓았다. 지붕으로

올라간 침팬지는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바나나를 흔들어대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고통스러운 듯 쭈그리고 앉아 우는 소리를 내자 마침내 침팬지는 내려와 그녀를

안아 주었다. 진화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동정심은 바나나에 대한 식욕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상호성은 침팬지가 음식을 나눌 때 잘 드러난다. 침팬지는 자신을 돌봐 주거나

또는 무리 안의 권력 다툼 때 자기를 도와 준 침팬지와 음식을 나눈다. 수컷은 마음에

드는 암컷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섹스 보상을 받는다. 실험에서 침팬지는 자기는

먹을 수 없어도 다른 침팬지들이 먹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며, 흰목꼬리감기원숭이도

자신은 아무 것도 못 받더라도 동료 원숭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행동할 때가 있다.

상호성의 또 다른 표현은 불공정에 대한 항의다. 원숭이들에게 과제를 시킨 뒤

한쪽에는 오이를 주고, 다른 한쪽에는 맛난 포도를 줬더니 오이를 받은 원숭이들이

오이를 내던지면서 스트라이크에 들어가더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월가 사람들이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다고 얼마 전 보도됐을 때 우리가 느꼈던 마음과 오이를 받은

원숭이의 마음에서 다른 점은 무엇인가?

본성으로 만드는 인도적 사회의 아름다움

원숭이들이 이처럼 자연적 도덕 질서에 대한 힌트를 줘도, 사람들은 아직도 자연을

‘이빨과 발톱에 피가 묻은 세상’으로, 인간 세계를 ‘고상한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보는 시각을 완강히 고집하고 있다.

진화론으로 인간을 연구한다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신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우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 영장류가 그들의 자연적 본성을 이용해

인도주의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이 훨씬 더 숭고하지 않은가?

발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동물이 감정을 가졌음은 물론 “코끼리의 경우 미래를

믿는 초보적 종교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미국 코넬대학의 코끼리 연구학자 캐서린

페인 교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동물에게 과연 도덕심 또는 지능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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