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는 잘못된 이름, 바꿔야 한다
전문가들 “멕시코독감, H1N1이 적당”
당초 돼지독감, 돼지인플루엔자라고 불리던 신종 A형 H1N1 인플루엔자를 ‘신종
인플루엔자’ 또는 ‘신종 플루’로 부르고 있는 현재의 이름 짓기는 잘못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는 항상 변종이 나오게 돼 있는데, 그러면 신종이 나올
때마다 신종 플루라 부르고, 아니면 제2의 신종, 제3 신종 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일 SI의 이름을 ‘2009 인플루엔자A(H1N1)’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 보건복지가족부와 질병관리본부도 ‘신종 인플루엔자’로 부르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신종 플루라는 뜻의 ‘Novel Flu’를 쓰고 있다.
서울대 의대 지제근 명예교수는 “이번 인플루엔자는 돼지인플루엔자에서 시작됐지만
사람에게 들어와서 염기서열이 바뀌었으므로 돼지독감 또는 SI라는 이름은 적당하지
않고, 또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신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H1N1으로 부르는 것이 제일 적합하지만 일반인에게
어려운 이름이므로 좀 더 쉬운 명칭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 등장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보통 유전자의 종류, 처음 발생한 곳
등을 따져 이름이 붙여진다. 신종 플루가 처음 돼지독감으로 불린 이유도 유전자
안에 돼지 인플루엔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류독감은 유전자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스페인독감이나 홍콩독감은 유행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러나 신종 플루에는 바이러스의 유전자 특성이나, 발생 지역에 대한 정보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또한 인플루엔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신종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
충북대 수의학과 모인필 교수는 “인플루엔자는 RNA에 유전 정보를 담는데, 이
RNA는 8조각의 단백질로 나뉘어 있어 이 조각들이 서로 섞이며 끊임없이 변이한다”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의 변이에 거듭하기 때문에 신종이라는 표현은 ‘새
변종’이라는 일반 명사로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마치 ‘새 차’라는 말은 일반 명사로 사용해야지, 새 차라는 이름을 특정
차의 고유 이름으로 사용해 버리면, 새 차가 나올 때마다 ‘새 차 2’ ‘새 차 2-2’
등으로 이름을 지어야만 하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이름을 바꾼 것은 양돈업계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명칭이
특정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최초 발생지 또는 최대 희생자를 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과거 많은 희생자를 낸 독감이 스페인독감, 홍콩독감으로
불리는 이유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번 사태 초기에 양돈협회의 의견을 반영해 ‘멕시코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었다.
이런 문제 제기 때문에 현재의 ‘신종 플루’란 이름은 앞으로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박승철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장은 “신종 인플루엔자라는 이름은 이 인플루엔자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임시로 붙여진 이름”이라며 “신종 플루의 실체가
좀 더 드러나면 멕시코 독감이든, 다른 이름으로든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