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손씻기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조류 인플루엔자의 학습효과 때문일까요.
신종 플루(인플루엔자 A/H1N1)가 유행하고 있지만 그 위력에 비해 너무 조용합니다.
그만큼 보건 당국과 우리 의료 수준을 믿는다는 뜻이겠죠?
지난 2002년 사스 때에는 한마디로 난리였습니다. 국립의료원을 격리치료 병원으로
지정하려 하자 인근 주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여 무산시켰던 것 기억나십니까? 네티즌은
중국에서 귀국하는 유학생을 비난했습니다. 성경, 노스트라다무스, 조선 중기 예언서
등을 들먹이며 ‘인류 멸망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저는 당시 기자로서 사스를 예방하려면 손을 제대로 씻어야 한다는 기획기사를
썼다가 독자들로부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지 고작 손씻기가 대책이냐”고 격렬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손씻기가 전염병 예방에 최선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를 강조하는 뉴스를 접하면
그때가 떠올라 ‘썩소’를 짓게 됩니다. 썩소가 ‘썩은 미소’인 건 아시죠?
과학적으로 손을 제대로 씻으면 모든 전염병의 7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수억원의 멸균·소독 장비를 들여놓지 않더라도 의료진이 손만 제대로
씻으면 병원 감염을 40∼50%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씻기는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손은 귀가 후, 식사 또는 요리 전, 화장실에서 나올 때, 환자를 간병하기 전후에는
반드시 씻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 정서에는 환자와 만나고 난 뒤나 남과 악수한 다음에
손을 씻으면 상대방에 대한 결례로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손을 씻어야 합니다.
‘손에 물만 묻히는’ 것은 손씻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누로 거품을 충분히
낸 다음 흐르는 물에 구석구석 ‘제대로’ 씻어야 합니다. 특히 손가락 사이와 손금·손등·손톱
등 구석구석 씻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손을 제대로 씻었는데도 전염병 감염 가능성이 높은 장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공중화장실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
등에 힘입어 우리나라 화장실의 외형은 너무나 아름다워졌습니다. 그러나 위생이라는
눈에서 보면 ‘아직’입니다.
우선 수도꼭지 없는 세면대가 널리 퍼져야 합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순간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때문입니다. 예부터 병원의 의료진이
사용하는 세면대에는 꼭지가 아니라 페달로 물이 나오게 했지요. 최근엔 적외선 센서로
손 온도를 감지해 물이 나오게 하는 세면대가 번지고 있지요?
비누는 고형이 아니라 액체가 더 위생적이라는 것,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가장 무서운 것은 손건조기입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공중화장실 14곳의
손건조기를 점검했더니 흡입구에는 좌변기 수준, 송풍구에는 화장실 손잡이 수준의
세균이 검출됐다고 합니다. 손건조기는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공기를 모아서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균을 퍼뜨리는
온상이 됩니다.
대한민국 화장실이 다 바뀌면 좋겠지만, 그때까지는 개인이 위생에 더 신경을
쓰는 방법밖에 없겠지요. 이번 기회에 손수건이나 1회용 화장지를 갖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한때 손수건은 사랑의 선물이고 에티켓의 상징이었는데….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이 칼럼은 중앙일보 5월 4일자 ‘삶의 향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