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는 있어도 봄총각은 없는 까닭?
섬세한 호르몬 분비 시스템 탓
‘봄처녀’
볼우물을 붉히며 봄바람 나게 하는 봄은 자살 또한 가장 많은 계절이다. 얼핏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현상은 의학적으로 뿌리가 같다. 둘 다 날씨 변화가
인체 호르몬의 분비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일어나는 것.
봄의 호르몬 변화는 남자보다 여성에게 더 커서 ‘봄처녀’는 있어도 ‘봄총각’은
없는데, 이는 의학적으로도 타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란병원이 2004년 20~30대 남녀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의
84%, 남성의 65%가 봄이 되면 신체적 변화를 느끼고, 여성의 45.6%, 남성의 40.4%가
봄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의욕이 생긴다고 답했다. 남성보다 여성이 봄을 더
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열쇠가 되는 호르몬은 세로토닌. 햇빛의 양이 많아지면 세로토닌 호르몬이 더
분비돼 긍정적이 되고, 더 활동적으로 바뀐다. 반면 햇빛의 양이 적어지면 우울한
감정이 나타나기 쉽다. 세로토닌 호르몬은 화, 공격성, 체온, 기분, 수면, 식욕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인간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특히 여성은 생리와 임신 등 호르몬 체계가 복잡하고 섬세해서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변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학술지 ‘일반정신의학 기록(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에 지난해
9월 실린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니콜 프라삭리더 박사 팀의 연구는 계절별로 세로토닌
호르몬 양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세라토닌 양은 가을과
겨울에 낮고, 봄과 여름에 높다.
봄 햇살에 따라 이처럼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데는 세로토닌과 함께 멜라토닌 호르몬의
영향도 거론된다. 봄이 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나른해지며,
밤에 잠을 잘 못자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봄 열병(spring fever)’으로 일컬어지는
증상이다.
멜라토닌 분비량은 겨울에 많고, 낮 시간이 길어지면서 줄어든다. 멜라토닌은
수면, 성욕, 식욕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길어지는 낮 시간과 함께 멜라토닌 분비가
줄면서 잠을 잘 못 자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봄은 자살의 계절”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에 따르면 봄에 자살이 가장 많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자살 실태와 대책’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10년간 경찰서 3곳에서 발생한 자살사건을 분석한 결과, 자살이 가장 많은 것은 봄(29.6%)이었고
이어 여름(26.3%), 가을(23.7%), 겨울(20.4%)이었다.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원래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예민한 사람은
겨울에는 우울한 감정이 침체된 상태에 있다가 봄에 약간의 기운을 얻게 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겨울에는 자살을 기도할 엄두도 못 내지만,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서 자살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 박 교수는 “우울한 봄이 되지
않게 운동이나 활동적인 취미 활동에 흥미를 갖는 등 감정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