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고향을 우린 왜 떠났을까
섬진강 변의 동화처럼 애틋한 매화나뭇길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일 때
맨 먼저 매화에게
옅은 화장을 시켰지
옥결 같은
뺨엔 옅은 봄을 머금고
흰 치마는 달빛에 서늘해라.’
―고려시대 문인 진화(陳華•1179∼?)
꽃 멀미가 난다. 울긋불긋 꽃 대궐. 이 골짜기, 저 골짜기마다 꽃동네. 강 둔치에도
하얀 매화, 강물 속에도 매화꽃이 어린다. 하늘의 흰 구름조각마저 매화꽃 닮았다.
요즘 섬진강 기슭은 온통 매화 세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매화 그늘에 앉아 ‘혈압
오르는 것’을 식힌다. 꽃에 델세라 들숨날숨을 고른다.
‘갓핀/청매(靑梅)/성근가지/일렁이는/향기에도/자칫/혈압이/오른다.’(신석정
‘호조일성’ 부분)
섬진강 매화 길은 남도대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남도대교는 경남 하동 화개마을과
전남 구례 간전을 잇는 다리. 하동 쪽 길은 19번 국도이고, 구례에서 광양 다압에
이르는 길은 861번 지방도이다.
매화는 남도대교에서 섬진교까지 양 기슭을 따라(약 18km) 앞 다퉈 꽃눈을 터뜨리고
있다. 꽃은 하동 기슭보다는 861번 지방도의 광양 기슭이 훨씬 많다.
매화는 멀리서 보는 게 좋다. 매화 속에 파묻히면 하나하나는 잘 보이지만 꽃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산에 가려 큰 산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섬진강 매화는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 쪽에서 광양 기슭을 봐야 제 맛이다. 광양 다압 쪽에서는
강 건너 하동 기슭의 꽃들을 즐길 수 있다.
섬진강 하동 기슭의 매화는 적지만 자연스럽다. 동구 밖 논둑길 밭둑길이나 동네
고샅길에 피어 있다. 광양 다압 기슭 매화는 거의 대규모 농원에서 심은 것이다.
그만큼 인공적이다. 하동 기슭은 4월 벚꽃이 일품이다. 벚꽃은 벌써 꽃망울이 탱탱
불어터졌다. 벚꽃이 한창일 땐 광양 기슭이 한적하다.
하동 쪽 19번 국도에서 광양 기슭 봐야 제맛
남도대교에서부터 861번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강물은 풀어져 물결주름이 제법
굵다. 물이 휘돌아가는 곳마다 백사장이 하얗게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군데군데
노란 산수유가 담담하게 서 있다. 붉은 동백꽃은 이미 색깔이 한풀 바랬다. 물새들은
부지런히 물속을 헤집는다. 마른 갈대가 서걱댄다.
늙은 농부들은 바쁘다. 과수원마다 농사 채비에 부산하다. 구수한 거름 냄새.
마른 밭둑 길 태우는 연기가 아늑하다. 배나무 밭, 포도나무 밭이 많다. 가끔 감나무
밭도 보인다. 요즘 감나무는 벌레가 꼬이지 못하도록 껍질을 벗겨 키운다.
언뜻 보면 매끈한 배롱나무 줄기 같다. 생김새도 복숭아나 배나무 비슷하다. 위쪽으로
뻗는 가지를 잘라 버려 다복솔처럼 펑퍼짐하게 자란다. 키를 작게 키워야 가을에
감 딸 때 수월하기 때문이다.
광양
다압 염창마을에서 잠시 다리품을 쉰다. 온통 매화 세상이다.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머릿속이 맑아진다. 벌들은 잉잉대며 꿀 따기에 정신이 없다. 강 건너
맞은편은 하동 화개 상덕마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고즈넉하고 소박하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 속 동네 같다.
“우리 어릴 적에는 모두 저런 동네에서 살았었는데….” 매화 그늘 아래 평상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어느 할머니가 혼잣소리로 말한다. 할머니는 관광버스로 단체 꽃구경
왔다. 그러자 그 옆 할아버지가 받는다. “초가집에서 꽁보리밥 먹으며 살았지만,
어쩌면 그때가 더 행복했는지도 몰라….” 그때 매실농장 할머니가 매실차를 내민다.
“뭐 드릴 거는 없고… 이거라도 좀 드시고 가시지요. 병이 없어 싸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압면 평촌 서동 동동마을 골짜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동구 밖에서 물끄러미
매화에 파묻힌 동네를 바라보고 있으면 황홀하다. 우리들은 뭘 찾으러 저런 꿈 같은
고향을 떠나왔을까. 그 속에서 눈물 없이 놀던 때가 애틋하다. 마을 뒤 넥타이를
풀어놓은 듯한 산길이 아득하다. 그 길 따라 산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청매실농원)에 가까울수록 강기슭이나 길가 언덕은 온통
꽃동산이다. 덩달아 사람과 차도 북적인다. 매화 묘목, 매실 장아찌 등을 파는 길거리
상인들도 눈에 부쩍 띈다. 스피커에선 유행가가 터져 나오고, 느끼한 부침개 냄새가
매화 향기에 섞여 흐른다.
○ 토종매화는 꽃 작고 성글어… 이번 주말이 절정
섬진강 매화는 일단 광양 다압 861번 도로를 발로 걸으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게
좋다. 그 뒤엔 하동 19번 도로를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맞은편 광양기슭 매화를 눈으로
보면 된다.
19번 국도는 교통량이 많아 걷기엔 위험하다. 22일까지가 절정이다. 아무래도
꽃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전 9시 이전에 움직이는 게 좋다.
압록사거리에 있는 예성교에서 구례교까지 10번 도로를 따라 걷는 길도 호젓하다.
매화가 많지는 앉지만, 동네 어귀나 길가에 홀로 핀 꽃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도중엔
황토 염색 체험을 할 수 있는 다무락마을도 있다.
사실 떼로 핀 매화는 ‘양계장 닭’ 같다. 섬진강변 농원 매화는 매실을 따기
위하여 ‘대량 양식’하는 꽃이다. 꽃이 가지에 덕지덕지 붙는다. ‘매화 나무’라기보다는
‘매실 나무’인 셈이다. 고고한 맛이 덜하다. 향기도 오래가지 않는다. 우르르 피었다가,
바람 한 번 건듯 불면 힘없이 진다. 벚꽃 닮았다.
하지만 꽃이 많이 붙는다고 꽃을 탓할까. 어디 개량종 매화라고 꽃이 아닐까.
어느 꽃이든 ‘꽃은 꽃’일 뿐이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다. 벌떼처럼 우르르 몰려와
꽃은 뒷전이고 술과 노래판을 벌이는 게 문제다. 사람은 결코 꽃이 아니다.
토종 매화는 꽃이 작다. 꽃도 띄엄띄엄 성글게 돋는다. 향도 은은하고 오래간다.
검버섯 마른명태 같은 몸에서 어느 날 화르르 꽃을 토해낸다.
매화는 홀로 피어야 품격이 있다. 매서운 추위를 견딘 매화는 향기도 그윽하다.
깊은 산 속 나 홀로 핀 늙고 수척한 한 그루 매화.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어도,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었다 진다. 그 은은한 향기 냇물 따라 십리 밖까지 퍼진다.
벌 나비가 날아든다. 밤엔 달빛과 별빛이 꽃잎 위에 내려앉는다.
◇교통편
▽항공= 서울∼광주, 서울∼여수, 서울∼진주 ▽기차= 용산∼구례구 무궁화 새마을호
▽고속버스= 서울∼구례(강남터미널) 1일 6회 ▽구례공용버스터미널(061-780-2730)에서
광양 다압 방면 시내버스 이용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서울∼전주∼남원∼구례,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대진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남원∼구례
◇먹을거리
▽구례= 전원가든(매운탕 061-782-4733), 부부식당(다슬기수제비 061-782-9113)
◇문의 △구례군청 문화관광과(061-780-2450) △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관실(061-797-2731)
‘산청 3매’… 고불매… 백매… 흑매…
영호남에
늙은 선비를 닮은 매화가 많다. 우선 경남의 ‘산청3매’가 있다. 정당매는 강회백(1357∼1402)이
젊은 날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매화다. 강회백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고위직까지 올랐던 고려 문인.
현재 3개 줄기가 말라 죽고, 1개 줄기에서 어렵게 꽃망울을 밀어 올리고 있다.
원정(元正) 하즙(1303∼1380)이 심은 원정매도 있다. 원줄기는 말라 죽었으나 밑둥치
옆에서 가지가 나와 분홍 꽃을 피운다.
남명 조식(1501∼1572)이 61세 때(1562년) 산천재 앞뜰에 심은 남명매는 지금도
분홍 꽃을 피운다.
전남 장성 백양사 우화루 곁의 350살 고불매(古佛梅)는 천연기념물(제486호)이다.
밑동에서부터 세 줄기로 갈라져 있으며 담홍색 꽃을 피운다. 고불은 ‘인간 본래의
면목’이라는 뜻. 백양사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이기도 하다.
전남 순천 선암사는 400년 넘은 것만 십여 그루(사진)가 있다. 이 중에서도 원통전
담장 뒤에 홀로 서 있는 600살 백매가 으뜸이다. 둘레 70cm에 키가 11m나 된다.
전남 구례 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 사이 600살 흑매(黑梅)도 유명하다. 하도 붉게
피어 해질녘 빛에 보면 검은색이 감돈다. 그래서 흑매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매화를 끔찍이 생각했다. ‘매형(梅兄)’이나 ‘매군(梅君)’이라고
부르며 마치 친구처럼 대했다. 때론 신선으로 여겨 ‘매선(梅仙)’이라고까지 했다.
눈 내리는 겨울 밤엔, 화분 매화를 앞에 놓고 “너도 한잔, 나도 한잔”하며 술벗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섣달 초순 어느 아침 “화분 매화에 물을 주어라”하고 눈을 감았다.
안동 도산서원엔 지금도 늙은 매화가 해마다 꽃을 피운다. 그 매화는 후손들이 이황
선생을 기려 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