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고통 끝 뿌듯함에 빠져 산다”

‘서브스리’ 99회 남궁만영 “100회 채워야죠”

“달리는 고통 끝 뿌듯함에 빠져 산다”

달리면서 “헉헉∼”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

흐름을 느끼게 된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일본의 고지마 기이치(67)는 세계 아마추어 마라토너 동네에서 신화로 통한다.

마라톤 경력 26년에 풀코스 완주 횟수가 무려 1200회에 육박한다. 2005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서 이미 1013회 완주를 마쳤을 정도.

하지만 그도 못한 게 있다. 마스터스(아마추어 러너)의 꿈인 서브스리(SUB-3)이다.

고지마의 최고기록은 3시간7분37초. 한 해(2001년) 최고 101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했던

그도 “서브스리 꿈은 접은 지 오래”라며 못내 아쉬움을 표시한다.

서브스리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 100m를 평균 25.6초의

속도로 42.195km를 달려야 이룰 수 있다. 풀코스 3시간∼3시간 5분대 기록 보유자

중에는 수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해보지만, 끝내 서브스리에 실패한 경우도 많다.

잡힐 듯 하면서도 사람 애간장을 다 녹이는 게 서브스리인 것이다.

2009년 2월 현재 마스터스 세계 최고기록은 2003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멕시코의

안드레스 에스피노자(45)가 세운 2시간8분46초. 한국 마스터스 최고기록(브룬디 출신

도나티엔 2시간18분39초)에 무려 9분53초나 빠르다. 물론 에스피노자는 엘리트선수

출신이지만 서양에선 40세가 넘으면 출신 여부와 관계없이 마스터스로 간주한다.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은 에티오피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세운 2시간3분59초.

100m를 평균 17초63의 속도로, 10초에 평균 56.7m를 달린 셈. 서브스리 주자와는

100m 평균 7.43초 빠르다.

인간의 신체능력은 25세를 정점으로 매년 약 1%씩 떨어진다. 40, 50대가 대부분인

국내 마스터스의 신체능력은 20대 때보다 15∼35%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만약 40세

때 3시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면 1년 뒤 41세 땐 똑같은 조건에서 달린다 해도 3시간1분48초에

결승선에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불과 몇십 초를 단축하지 못해 서브스리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9년 2월 현재 국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자는 5만 명 정도. 이 중 서브스리 완주자는

2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20명에 1명꼴로 그만큼 어렵다. 물론 서브스리 완주자는

마스터스 사이에서 ‘지존’으로 대접 받는다.

 

○ 마라톤 풀코스 136회 완주 … 서브스리 성공률 무려 72.7%

남궁만영 씨(41)는 서브스리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다. 보통사람은 평생 몇

번 할까 말까인데, 그는 지금까지 136회 완주에 서브스리를 99회나 했다. 서브스리

성공률이 무려 72.7%에 이른다. 개인 최고기록은 2005년 일본 도야마 마라톤에서

준우승하며 세운 2시간38분47초. 그는 한마디로 ‘아마추어 마라토너 동네의 이봉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선수 출신도 아니다. 초중학교 때 교내 달리기대회에서 맡아 놓고 일등을

한 것이 전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1991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바위를 탔다. 주말이면 손바닥이 근질근질, 로프를 매고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언저리를 맴돌았다.

“바위 타는 손맛에 푹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산악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그쪽에 내로라하는 고수가 많았습니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마라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지요.”

1997년 동아마라톤에서 처음으로 무작정 풀코스에 도전했다. 페이스 조절이란

것도 몰랐다. 그냥 처음부터 죽어라 달리다 보니 20km쯤 지나면서 힘이 바닥났다.

걷다 달리다 하면서 겨우 결승선을 끊었다. 그래도 기록은 3시간25분10초. 첫 완주로선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공짜는 없었다. 몸무게가 3kg이나 빠지고 거의 보름 정도를

탈진 상태에서 보내야 했다. 하여튼 내친김에 그해 가을 3번째 도전에서 처음으로

서브스리(2시간54분16초)를 이뤘다.

그는 키 168cm에 몸무게 61kg, 가슴둘레 95cm의 평범한 체격. 직업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개인택시 운전사. 2002년 봄 8년째 잘 다니던 직장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이유는 ‘맘껏 자유스럽게 달리면서 살고 싶다’는 단 한 가지. 당시

살고 있던 조그마한 아파트를 팔아 개인택시부터 샀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산과

들로 날아다녔다.

“운전하는 날은 오전 5시에 일어나 북한산을 2시간 정도 달린 뒤 8시에 핸들을

잡습니다. 일하다가도 틈만 나면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다리들어올리기, 토끼뜀,

오리걸음 등 몸을 단련하지요. 쉬는 날은 장거리를 달리거나 스피드 훈련을 하고요.

일요일에 마라톤 대회가 많기 때문에 일을 못하고 쉬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그만큼

남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너무 즐겁습니다.”

그에게 산은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다. 2006년 5월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67km 산악 마라톤에서 7시간43분의 기록으로 우승했다(현 최고기록은 7시간10분대).

보통 사람들이 15∼20시간 걸리는 거리를 그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낸 것이다.

그는 42.195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울트라대회에도 열심이다. 세계울트라마라톤연맹(IAU)이

주최하는 100km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7시간45분58초.

그는 왜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까.

“나를 벼랑 끝에 놓아두고 그 상황에서 헤쳐 나오는 게 즐겁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뭔가 이뤄냈다는 뿌듯함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냥 이렇게 묵묵히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여성(35)과 눈이 맞아 지난해 장가를 들게 됐습니다. 집 사람도 풀코스를

40회나 완주했을(최고기록 3시간57분) 정도로 열성분자입니다. 아쉬운 것은 서로

시간이 없어 함께 달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집사람도 일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서브스리 페이스메이커로 참가 … “가장 힘든 상대는 나 자신”

그의 꿈은 한국 최초 서브스리 100회 완주. 2007년까지 서브스리 97회 완주로

그 꿈이 곧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말 뜻하지 않게 왼쪽 발목에 건염이 생겨

지난해 1년 동안 거의 쉬어야만 했다. 그 사이 절친한 후배 심재덕 씨가 2008년 8월

먼저 서브스리 100회를 넘어섰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요. 그 대신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꼭 100회 서브스리를

이루겠습니다. 사실 첫 번째니 두 번째니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발목

부상은 나 자신에게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번엔 서브스리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합니다.

다른 분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겠지만, 그만큼 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처음 동아대회에 뛰었던 그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는 단 한 명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지요.”

그는 46.2m²(약 14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아내와 둘이 산다. 요즘은 벌이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는다. 투덜댄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봉달이’

이봉주처럼 성실하게 앞만 보며 가고 싶다. 부부가 몸 튼튼하면 되지 더는 뭘 바라겠는가.

이번 서브스리 100회가 끝나면 트라이애슬론도 하고 싶고, 암벽도 자주 타고 싶고,

잠 한숨 안 자고 달리는 국토종단 마라톤도 원 없이 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엔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길은 수십 수만 갈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러너들은 적이 아니다. 적은 내 마음 안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다음 구절에

무릎을 쳤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남궁만영 씨의 주요 마라톤 이력

▽ 서브스리 주요대회

▼99회= 2009. 2 아!고구려마라톤 / 2시간58분35초
▼97회= 2007. 12 구세군자선남비마라톤

/ 2시간54분31초
▼96회= 2007. 11 제주감귤마라톤 / 2시간59분22초
▼95회=

2007. 11 스포츠서울마라톤 / 2시간58분3초
▼92회= 2007. 10 공주백제동아마라톤

/ 2시간52분47초
▼91회= 2007. 10 강남국제평화마라톤 / 2시간59분18초
▼90회=

2007. 9 곡성섬진강마라톤 / 2시간58분21초
▼80회= 2007. 1 고성마라톤 / 2시간53분13초
▼70회=

2006. 4 합천벚꽃마라톤 / 2시간56분53초
▼52회= 2005. 5 일본도야마마라톤2위

/ 2시간38분47초
▼40회= 2004. 11 스포츠서울마라톤 / 2시간45분24초
▼30회=

2004. 2 고성마라톤 / 2시간43분55초
▼20회= 2002. 3 서울마라톤 / 2시간42분40초
▼10회=

2000. 10 통일마라톤 / 2시간51분4초

 

▽ 63km 이상 울트라 주요대회

▼2006. 6 불수사도북 5산 종주 산악마라톤 / 67km/7시간43분
▼2004. 9 네덜란드

IAU 100km / 8시간14분
▼2002. 10 일본 동경 산악마라톤 / 71.5km / 8시간52분57초
▼2002.

3 제주100km울트라 마라톤(1위) / 100km / 10시간10분
▼1997. 10 일본 산악마라톤

전체3위 / 71.5km / 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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