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따라서” 장기기증 뜻 늘지만…
‘가족 반대하면 이식 못해’ 법 장벽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따르겠다”며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지만, 본인이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혀도 유가족이 반대하면 장기 기증이 이뤄질
수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이지선 팀장은 “평소 하루 30여 건 정도 전화가
왔지만 추기경의 선종 이후 전화 문의는 두 배, 온라인 회원 가입은 평상시의 4배로
늘어나 하루 100명 이상이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응권 교수는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그러나 각막 이식을 하려면
사후 6시간 이내에 각막을 꺼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법 제도는 고인이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장기 이식 과정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유가족 구성원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면
결국 장기 적출 가능 시간을 넘기게 돼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11조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장기 이식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미국처럼 고인의 의사만 확인되면 가족 동의 없이도 장기 이식을
시작할 수 있게 법이 바뀌어야 애타게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더욱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의사만 표시돼 있으면,
기증자가 사고 등으로 숨질 경우 바로 가족의 동의 없이도 장기 이식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안구 적출을 맡아 진행한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도
“장기 기증약속을 한 사람은 3~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기증되는
각막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며 “고인의 숭고한 뜻이 있어도 가족의
동의 절차라는 부가 조건 때문에 뜻을 받들 수 없게 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립 장기이식 관리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현재 국내에서 각막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모두 3630명이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사망자로 각막 이식을
받은 환자는 174명, 뇌사자로부터 각막을 받은 환자는 181명에 불과하다. 외국에서
각막을 비싼 값에 수입해 수술 받은 환자를 포함해도 각막 이식을 받은 환자 총 숫자는
628명에 그쳤다.
한국도 2007년 9월부터 ‘운전면허증 장기기증 의사표시 제도’에 따라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의사를 표시할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해 실제 면허증에 의사 표시를 한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