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유지는 수도꼭지 돌리듯

건강해지는 것, 혹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의 새 해 소망 중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건강’이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혹은 여러 다른

이유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많이 쓰는데 왜 건강은 별로 좋아지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많이 만난다.

그들에게 이런 저런 방식으로 ‘생활 속에서의 건강 관리’에 대해 설명하곤 하는데

얼마 전 세수를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건강해지는 비결은 바로 수도꼭지에 있었던 것이다!

수도꼭지는 뜨거운 물과 찬 물이 따로 나오면서 섞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찬 물과 뜨거운 물을 따로 조절하는 방식의 수도꼭지도 있고

건강유지는 수도꼭지 돌리듯

하나의 손잡이로 양쪽의 물 양과 온도를 동시에 조절하는 수도꼭지도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손잡이 한 두개로 뜨거운 물과 찬 물의 양을 적절하게 맞추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물을 일단 틀어 놓고 멍하니 있다간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예상치 못한 뜨거운 물에 의해

이런 식으로 오도 방정을 떨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급히 온도를 낮추다가 얼음같이 찬 물에

이런 식으로 또 다른 방식의 오도방정X2를 떨기도 한다.

다시 조심해서…

아주 적당한 온도의 물이 나오면 그제서야 편하게 세수를 할 수 있다.

수도꼭지의 원리는 (모두 알다시피) 정말 단순하다.

찬 물과 뜨거운 물의 양을 조절해서 잘 섞으면 원하는 적당한 온도의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리다.

좀 뜨겁다 싶은 물이 많이 나오게 하고 싶다면 뜨거운 물을 많~이, 찬 물은 상대적으로

적게 틀면 된다.

좀 미지근한 물을 졸졸 나오게 하고 싶다면 뜨거운 물은 적게, 찬 물은 상대적으로

많이(하지만 너무 많지 않게) 틀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정도와 조절된 물의 온도와 양이 일치하는지에 대해 미리

정확히 판단할 수 없고

손으로 느끼는 물의 온도를 통해서만 내가 양을 잘 맞추었는지 잘 맞추지 못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마치 찬 물은 시원하고, 뜨거운 물은 따뜻하다고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좋다는 것’에 약하고, 심지어는 눈에 불을 켜고 찾기도 한다.

하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악습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요소들은

한 편으로 놓지 않으려고 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좋은 쪽’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다.

담배 피우고 술 먹고 과로하는데 잘한다고 박수 쳐 줄 의사는 없단 말이다.

하지만

(의사를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매정하게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 것을 잘라 버리라거나, 없애야 한다고

지적해 줄 수 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시에 어느 한 쪽만 선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잘 조절해서 양 쪽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처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과 도움이 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버릴 수 없는 요소들의

조절이 중요하단 말이다.

양적으로나 중요도로나 양쪽을 1대1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순화시켜 도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은 아마 건강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거꾸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습관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건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는 결과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상황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몸에 좋은 것을 향한 노력을 많이 하지만, 나쁜 것들을 그에 못지 않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인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하소연하거나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나는 왜 남들보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데도 항상 이런 문제가 있는 거지?"

"왜 나만 이렇게 아프지?"

이런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만났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요소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만성적인 소화 불량이나 호흡기 문제, 피부 문제, 알러지 등 일상적인 건강에서의

문제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을 몇 가지는

꼭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버리지 못한 나쁜 점들이 있다는 것만 알게 되어도

억울함을 덜고 생활의 개선을 시작하곤 한다.

...

여기에서,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질병은 꼭 나쁜 습관이나 환경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환경만 통제한다고, 수도꼭지를 잘 조절한다고 만사형통, 무병장수, 모든 병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질병 발생을 설명하는 역학적 모델에 따르면 질병은 ’병인-숙주-환경’ 의 세

요소의 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자신이 아무리 좋은 습관만 가지고 있고, 나쁜 것은 모조리 피한다 하더라도 숙주

요인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질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숙주 요인이 나쁘더라도 병인이나 환경 요인을 통제하면 질병 발생을 피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내가 방금 이름 붙인) "수도꼭지 이론"(- _ -;;)에서

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정리하자면

질병 발생의 요인 중 환경 요인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나쁜 환경 요인을 인식하고,

좋은 환경 요인과 나쁜 환경 요인의 ‘조절’, 즉 환경 요인의 통제를 잘 한다면

일상에서 겪게 되는 막연하고 복잡한 건강상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손을 씻으러 가실 때마다 한 번씩 생각해 보시길.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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